어둡고 축축한 굴레, 도피이자 여행, 그리고 스톡홀름

스웨덴에서 살아남기 #14 스톡홀름 여행기 #3

by 조현서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란 걸 증명하는 증거는 너무 많지만, 여행 중엔 그 사실을 잊을 때가 많다. 어렵게 돈을 모아 거대한 인천 공항에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의 나는 일상의 나와 굉장히 다르다. 비행기를 타러 인천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 서울의 빌딩 숲에서 느끼지 못한 수많은 감흥에 대한 기대 혹은 확신으로 가득 찬다. 비행기 안에서의 긴 시간을 견디고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딜 때, 형용할 수 없는 설렘으로 가득 찬다. 여행지에 실제로 사는 사람에게는 그곳이 한국인이 서울을 보는 것과 같겠지만, 여행객에겐 목적지가 곧 앨리스가 모험을 떠나는 원더랜드다.


신비로운 원더랜드에서 씁쓸함 혹은 안타까움을 느낄 기회가 거의 없듯이,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축축한 일상 속 체내의 축척된 독기를 빼내기 위해서 떠나는 여행 속 축축한 일상을 떠올리기엔 여행 시간이 너무 적다. 애초에 축축하고 어두운 독기를 피해서 떠나는 게 여행이기에, 우리의 정신은 밝고 찬란한 원더랜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빛에 집중하면 어둠을 보기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여행 명소는 일상의 축축함과 어두움을 가장 찾기 어려운 곳이다. 과거의 찬란한 문화 유적, 문화유산이 가득 찬 박물관, 그리고 화려한 무늬로 장식한 거대한 호텔은 일상의 때가 거의 묻지 않은 공간이다. 공간의 정체성이 관광객의 마음가짐과 톱니 바뀌처럼 정확하게 맞물린다.


스톡홀름은 여행객의 시선으로는 완벽한 도시이다. (내가 느낀 바로는) 스톡홀름은 화려함과 편리함이라는 도시의 미덕과 여유롭고 차분한 공기라는 공존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요소가 매력적으로 공존하는 도시이다. 백화점과 꽤 길게 이어진 H&M 및 다른 옷 가게들이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는 동시에, 감라스탄의 아름다운 건물 속에서 여유롭게 산책하고 발트 해가 보이는 Kungstradgarden 공원에서 늘어진 배와 아름다운 건축물을 즐길 수 있다. 도시의 편리한 쾌락과 일상에서 찾을 수 없는 여유로움이라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일상의 때를 뺄 수 있다.


앨리스의 원더랜드보다 더 매력적인 스톡홀름에도 여행객의 시선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스톡홀름의 집값은 너무나 과대평가되어있어(275%), 이를 부담할 수 없는 계층은 스톡홀름에서 살기 어렵다. 스톡홀름 내에도 슬럼가가 존재한다. 과거의 신분제와 이에 따른 경제적 격차에 의한 거주지 분리가 현재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Sodermalm' 지역은 예전에 어두울 때는 꽤 위험한 지역으로 여겨졌다. 스톡홀름도 현대사의 비극이 손을 전혀 닿지 못한 곳은 아니었다. 밝은 빛 때문에 미처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할 뿐이다. 축축한 일상의 때를 빼기 위해 간 빛나는 원더랜드도 누군가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어두운 굴레다. 형형색색의 건축물과 푸른 발트해가 공존하는, 모두가 좋아하는 스톡홀름도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