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철사

스웨덴에서 살아남기 #16

by 조현서

스웨덴에 오기 전에 스웨덴 말뫼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던 친구에게 조언을 들었다. 팟캐스트를 함께 했던 이 친구는 나에게 아주 간단한 두 가지 조언을 남기고 워싱턴으로 떠났다. 비타민 D는 꼭 먹어라. 그리고 교환학생 생활 한 달이 지날 때 즈음 조심해라. 첫 번째 조언은 예테보리에 도착하는 순간 바로 마음속으로 와 닿았다. 햇빛이 빠져나올 쥐구멍만 한 틈 조차 없는 거대하고 짙은 먹구름을 첫날 확인했다. 두꺼운 먹구름은 하루 만에 형성되지 않았을 테고, 햇빛은 저 거대한 장벽을 뚫기 어려울 것이다. 비타민 D는 내 가슴속의 인공 햇빛 정도의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두 번째 조언은 솔직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항에서 다른 교환학생 친구들과 기숙사로 함께 타고 온 버스는 시끌벅적한 설렘으로 가득 찼다. 이름도 모르면서 버스가 울릴 정도로 시끄러운 대화는 모두의 설렘을 증명했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안락한 기숙사 방을 본 순간, 스웨덴에서 시작할 내 삶은 어떨지 굉장히 설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출발, 처음 시작 때는 이게 어느 의미인지도 잘 몰랐다. 새로운 곳에서의 나는 어떤 삶을 살 지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나 상상도 없었다. 북유럽으로 여행을 온 기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여행과 생활은 완전히 달랐다.


스웨덴에서 지낸 지 어느새 한 달이 넘어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어느새 첫날의 설렘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방인으로서 타지에서 사는 것은 힘들다. 이 사회에서 언제까지 타자로서 머무를 것인가 하는 우울함과 사람들을 보고 싶다는 외로움에 어느새 사로잡힌다. 우울함과 외로움이라는 두 가지 색깔의 단단한 철사로 내 심장을 옥죈다. 끊을 수 없는 단단한 철사가 내 심장을 누를수록 나는 답답함을 참을 수 없다. 사람이 너무 보고 싶다. 답답하게 얽혀있는 철사를 풀어보고자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굳이 갈 필요도 없는 도서관을 간다. 심장과 철사가 맞닫아 상처 난 부분이 줄어드는 듯싶지만 이미 난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상처가 아무는 듯싶으면 어느새 철사는 더 두껍고 길어지고 심장을 옥죄는 매듭은 더 복잡하게 얽힌다.


사람을 하나 납치해서 내 방에 묶어놔 말동무를 시키는 상상을 했다. 스톡홀름 신드롬의 은행 강도 혹은 스릴러 영화의 사이코패스가 된 기분이었다. 이 끔찍한 상상을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우울함과 외로움이라는 두 색깔의 철사가 너무 두껍고 강하게 심장을 옥죄서 더 이상 심장이 기능을 하지 못하는 걸까? 철사가 심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지에 도달한 걸까? 그들의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지만 짓눌려 으깨진 심장을 보면 난 어떨지 잘 모르겠다. 나 역시도 우울함과 외로움에 서서히 잠식당하는 중이다. 어떻게 복잡하게 얽혀 심장을 짓누르는 철사를 끊어야 할지 모르겠다. 깊은 우물 안에 떨어진 나는 계속해서 물을 퍼내지만 어느새 물은 내 입술 근처에서 찰랑거린다. 점점 숨을 쉬기 힘들다. 끝이 없는 이 깊은 우물을 탈출할 수 있을까. 주여. 나는 당신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당신은 그들을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