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이다

한 작은 교습소가 코로나를 견디는 방법 - 6

by 조현서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괴테-

Goethe_%28Stieler_1828%29.jpg 괴테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학원도 이제 더 이상 대면 수업이라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퍼진 지금 학원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괴테가 말했듯이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라는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일인 교습소에게는 더욱더 미지의 대양과 같은 온라인 수업으로 무조건 나아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단순히 2주 동안 만의 일탈이 아니라, 온라인 수업이 완전히 오프라인 수업을 대체할 수도 있는, 그렇기에 무조건 대양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교습소 선생님과 나 둘 다 12월 28일 이후(27일 발표로 학원/교습소 운영 정지가 일주일 연장되었다)에도,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확진자 증가세 및 백신 관련 뉴스 같은 거대한 뉴스도 뉴스였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코로나의 기세가 그 전과는 달랐다. 일단 학교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일단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것에 집중하는 듯 보였지만, 이제는 코로나의 확산세에 영향을 최대한 덜 주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장 중간고사에는 약간의 편의를 위해서 학생들을 반반으로 나눠서 출석시켰다면, 현재는 한 번에 나오는 학생들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택했다. 코로나가 의사 결정에 성적 산출, 입시 등 다른 요소에 비해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을 교습소 선생님은 체감하고 있었다.

교습소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온라인 수업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일단, 컴퓨터 활용 능력이 굉장히 떨어져서 아직 화면 공유를 잘하지 못하기에, 선생님은 일단 화면 공유 없이 말로 설명하기 편한 과목을 우선적으로 수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고, 나도 동의했다. 컴퓨터와 ZOOM 프로그램 이해 및 조작 숙련도가 나와 선생님 모두 만족할 정도에 도달했을 때, 보조 자료를 활용해서 보다 세세하게 설명하는 과목을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방향성이 정해지고 난 뒤 해야 할 일은 명확해졌다. 선생님은 각 학년 수학 과목을 어떤 순서로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설계해야 했고, 나는 ZOOM의 모든 기능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추가 코딩 작업을 위한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특히 선생님은 교습소에서 가장 어린 학생인 3학년과 4학년 학생(예비 4학년, 5학년)들의 학습 순서를 어떻게 할지에 집중했다. 실제로 어릴수록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학습을 유도할 때에 비해서 집중력과 학습 태도의 차이가 컸다. 직접 학생들의 눈을 마주치고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이 중요한 나이일수록 온라인 수업에서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생님은 교습소에 있는 수많은 참고서와 교과서를 점검했다. 수업에 필요한 이미지와 가르쳐야 하는 개념을 비교해가면서 어떻게 강의를 진행할 것인지 판단했다. 그런데 고민은 내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예비 4학년 학생들에게는 보다 직관적으로 개념 설명이 가능한 5,6 단원(막대그래프, 규칙 찾기)을 먼저 가르치고, 예비 5학년 학생들에게는 칠판 필기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1,3단원(자연수의 혼합계산, 규칙과 대응)을 가르치기로 선생님은 결정했다. 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고, 어떻게 가르칠지 시뮬레이션을 하고, 필기 및 보조 자료의 필요성을 가늠하는 과정에서 당황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프로페셔널했다. 15년이 넘는 경력 동안 학생들의 점수가 80점 밑으로 내려간 적이 손에 꼽는 노하우를 가진 선생님의 능력이 어김없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ZOOM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법을 배울 때의 미숙하고, 실수가 잦고, 허술한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선생님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감탄하고 있는 순간,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머릿속에 스쳤다. 화면 공유 및 필기 활용 등 다양한 기능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느낀 감정은 미국 서부의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 위에서 자동차가 고장 난 아득함에 못지않았다. 선생님은 현재 ZOOM 프로그램을 열어서 강의를 진행할 수 있지만, 딱 그것만 가능했다. 그 외 ZOOM 회의 예약 및 링크 전송 등 기타 필요한 업무는 전부 내가 하고 있었다. 가장 심각한건 선생님의 컴퓨터 이해 및 활용 능력이었다. 선생님의 컴퓨터 이해도 및 활용 능력은 내 생각보다 훨씬 떨어졌고, 나는 굉장히 기초적인 부분부터 가르쳐야 했다. 백스페이스 버튼이 뭔지, 한글과 영어를 바꾸려면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창 오른쪽 상단에 보이는 직선, 사각형, X 표시가 무슨 뜻인지부터 시작해야 했다. 막막하지만, 괴테가 말한 배의 목적인 항해를 하기 위해서, 이제는 제대로 된 돛을 펼쳐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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