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레젝트 #15
코끼리 한 마리가 죽었다.
지은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름을 지어준 코끼리였다.
동물원 총책임자이자 포유류 담당 사육사 지은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근래 동물들을 떠나보내는 일이 많았지만, 이 코끼리는 특별했다. 단순히 그간 유전자 실험과 조작을 통해서 새로운 코끼리를 만드는 데 실패해서가 아니었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멸종하기 직전에 남아있는 단 한 마리의 코끼리인 동시에 이 코끼리는 지은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름을 지어준 동물이었다. 유달리 지은을 잘 따랐고, 지은에게 힘겨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곁에서 위로해주는 친구였다. 희한하게 지은 이외의 다른 사육사들이나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서, 지은이가 등장하면 순한 강아지처럼 바뀌었다. 지은은 이 코끼리에게 ‘둘리’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줬다.
지은에게 코끼리에게도 교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존재가 바로 둘리였고, 둘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이었다. 둘리가 점점 몸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지은은 모든 수단을 다해서 나아지게 할 방도를 강구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은이 할 수 있는 것은 둘리가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다리를 꼭 안아주는 것과 진통제 주사를 놔주는 것뿐이었다. 둘리가 죽는 순간, 지은의 일부도 상실되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지은에게 둘리란 가족 이상으로 소중한 존재였다.
어느 날, 동물원에 강도가 침입했다. 둘리가 죽었다는 기사가 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둘리의 상아를 노린 것이었다.
둘리의 상아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멸종된 탓에 실제 상아를 구할 수 없었고, 3D프린터를 이용한 가짜 상아만 장식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에, 부자들의 실제 상아를 향한 열망은 상상을 초월했다. 기사가 난 당일에는 실제로 지은에게 상아의 가격을 문의하는 전화가 기사가 나오자마자 쇄도했고, 코끼리가 한창 건강할 때보다 동물원을 찾는 인원이 몇십 배로 늘었을 정도였다.
상아를 노리는 강도는 당직이었던 지은을 마주했고, 바로 처리하려고 달려들었다. 목의 경동맥을 그을 수 있는 아주 날카로운 칼이었다. 복면을 쓴 삼인조 강도는 지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지은에게 가까이 가기도 전에 자꾸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부자들의 은밀한 비밀 요청 사항을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그들이었다. 가장 처리하기 쉬운 막내 여자 직원이 당직을 서는 날을 노려서 치밀한 설계를 통해서 동물원의 보안 시스템을 손쉽게 해킹했지만, 희한하게 지은에게 다가가려고만 하면 자꾸 발이 걸려 넘어졌다. 홧김에 그들은 총을 꺼내 쏘려 했지만, 갑자기 총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그들의 15년 경력 중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은은 겁에 질렸지만,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는 강도들이 마지막에는 우습게 느껴졌다. 지은은 손쉽게 강도를 신고할 수 있었다. 15년 경력의 프로 강도는 허무하게 동물원의 가장 어린 사육사에 의해서 잡혀버렸다.
강도를 신고하고 동물원을 순찰하는 도중, 지은은 마치 둘리의 상아가 달처럼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방에는 빛이 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둘리의 상아에서 나오는 빛은 달빛처럼 따뜻하게 지은을 감쌌다. 지은은 자신을 강도로부터 지켜준 존재가 누구인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지은이는 상아에 손을 댄 채로 미소를 짓는 동시에 울음을 참으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둘리야, 잘 지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