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18
'샌 주니페로로 오세요'
2050년 UN의 대표 슬로건이 넷플릭스 드라마에 등장하는 세상을 인용할 줄은 불과 2년 전만 해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2031년 대부분의 사람이 지구에서 사는 것을 포기할 줄은, 더욱이 몰랐다. 사람들이 생을 포기한 이유는 계속되는 이상기후도, 환경파괴도,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도 아니었다. 바로 전염병이었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종식된 지, 딱 25년이 지난 2048년, 새로운 전염병이 전 세계를 뒤덮었다. 시작은 코로나와 똑같이 중국 우한이었다. 코로나-19 때와 다르게, 병명에 중국을 붙일지 말지에 대한 논란이 불붙은 지 한 달만에 중국 내 1억 명이 사망했다는 CNN의 특보가 보도되었다. 역병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중국과 인접한 북한은 인구의 1/3이 알 수 없는 병명으로 사망했고, 한국은 1000만 명이 감염자로 집계되었다. 새로운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보고 이후로 모든 경제활동과 인구 출입을 막은 일본도 퍼지는 속도가 조금 덜했을 뿐, 예외는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국경을 맞댄 유럽은 공멸했다. 방역체계가 상대적으로 미비한 난민 캠프와 집시들을 중심으로 독일에서 이 새로운 전염병은 마치 빈대가 한 집을 장악하듯이 순식간에 퍼졌다. 섬나라라는 요점 덕에 상대적으로 역병으로부터 피해가 덜한 영국이 EU를 임시로 이끄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 세계가 마주한 적 없는 재앙이었다.
약물 재창출은 실패했고, 신약을 개발하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국이 '신시노팜(Neo-Sinopharm)'을 전염병 발병 한 달만에 내놨지만, 중국 내 백신 접종자 500만 명이 돌연 심장병으로 사망하며 백신 개발은 무위로 돌아갔다. 중국은 끝내 신시노팜이 심장 혈관 근처 혈전이 발생시키는 것을 해결하지 못했고, 서방의 제약사는 자본과 재원뿐만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기조차 어려웠다. 중국이 질병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설령 정보가 있다 해도,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상기후와 과다채취로 인하여 코로나-19 백신 생산의 핵심이었던 투구게의 씨가 말랐기 때문이었다. 화이자, 존슨앤존슨, 그리고 미국 정부는 극비리에 투구게 대량 양식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이때, 일론 머스크는 새로운 대안을 내놨다. 서버 관리 인원을 제외한 지구 전 인류를 가상세계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지구가 전염병으로 멸망할 것을 알았다는 듯이 이미 3년 전 자신의 가족과 평생 먹어도 모자를 식량과 함께 화성으로 이주했다. 그는 화상 인터뷰에서 가상세계 프로젝트 '샌 주니페로'를 발표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미러에 등장하는 가상현실의 제목을 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두개골을 열어 뇌만 꺼낸 뒤, 특수 처리된 통 속에 넣어 가상세계 서버와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본인만 화성에서 멀쩡하게 살아가면서 사람의 목숨을 포기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론칭한 일론 머스크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게다가 더 큰 비난은, 테슬라에 투자하는 금액에 따라서 가상세계에서 가지는 재산과 땅의 범위가 달랐다는 점에 있었다. 아무런 돈도 내지 못하고 들어간 사람들은 가상현실 속에서도 채굴 노동을 해야 했다. 긴급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을 돈으로 바라본다는 원론적이고 이상주의적인 비판은 일론 머스크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다른 기업들의 주식은 계속해서 하한가를 경신하는 가운데 테슬라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화성까지 치솟았다. 사람들은 하나둘 샌 주니페로로의 업로드를 택했다. '마치 비트코인처럼 일찍 가야 먼저 선점해서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천만명의 사람이 업로드를 신청했다.
1000만 명의 감염자가 나온 한국은 하지만 그중 예외였다. 신청자가 오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20대의 씨가 말랐기 때문이었다. 출산율 0.5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달성하고, 인구 데드크로스는 이미 2020년대에 지나버린 한국은 2050년, 20대를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청, 장년층은 이민을 택했다. 정부는 2040년, 2030 국경 봉쇄령이라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취하기 어려운 선택지를 내놨지만, 때늦은 조치였다. 일본, 중국, 러시아, 심지어 미국도 뒤에서 한국 청년들의 망명을 도왔다.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남녀 갈등도 이에 한몫했다. 한국은 남성도, 여성도 살고 싶어 하지 않은 나라였다. 차별과 역차별에 대한 논의는 30년 동안 그 균열이 깊어질 뿐, 정치권 어디서도 갈등을 봉합하려 하지 않았다. 한쪽은 한국 여성의 피해의식을 자극했고, 다른 한쪽은 한국 남성의 역차별 인식을 살살 긁었다. 가상세계가 사람들의 주 활동이 되는 2050년, 한국은 D10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D10으로서의 위상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언론은 나라를 떠나려 하는 20대를 그 이유조차 분석하지 않은 채 맹렬히 비난하고, 한국 정부는 러시아로 국경을 넘으려 하는 20대 청년을 잡아서 남녀 막론하고 잔인하게 처벌하는 뉴스를 연신 내보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