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연출, 연기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영화 <룸>

영화에서 중요한 세 가지 요소가 딱 들어맞는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by 조현서

<룸> 역시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브리 라슨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대한민국에서도 나름 큰 화제였다. <캐롤>의 케이트 블란쳇, <조이>의 제니퍼 로렌스, <브루클린>의 시얼샤 로닌 등 어느 때보다 쟁쟁한 후보가 있었기에 여우주연상에 많은 주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디카프리오가 과연 수상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스포트라이트가 쏠렸기에 상대적으로 여우주연상 부문에 언론에 관심이 덜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여우주연상 부문 역시 치열한 격전지였다. 결국, 여러 시상식에서의 결과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당히 보여주듯 <룸>의 브리 라슨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나 역시 브리 라슨이 수상했다는 사실을 듣고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한 층 더 고조되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부문 후보로 올랐다는 사실은 또한 영화 내 다른 여러 부분에서도 어느 정도의 완성도가 담보되기 때문이다.


룸 포스터.jpg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은 영화 관객들의 기대감을 한 껏 고취시키는 데 충분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브리 라슨과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환상적인 연기

결과적으로 <룸>은 내 기대 이상이었다. 연출, 연기, 촬영 등 영화의 여러 부분에서 영화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중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조이를 맡은 브리 라슨과 잭을 맡은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연기였다. <룸>이라는 영화가 보여줘야만 하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브리 라슨은 정확히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의문의 한 남자(닉, 숀 브리저스)에게 감금 당해 살면서 유일한 희망이라고는 잭 밖에 없는 그 드끓는 모성애, 그 모성애로 하여금 본인의 목숨을 담보 삼아서까지 잭을 탈출시키는 용기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관객들을 본인의 연기에 완전히 이입하게 만든다. 하지만 오히려 브리 라슨의 연기에 완전히 감탄하게 되는 부분은 탈출한 이후의 장면들이다. 탈출 이후에 느끼는 안도감, 갇혀 살 필요가 없다는 데서 오는 행복감과 함께 나의 중요한 관계 속 사람들이 잘 살아가는 데서 오는 배신감,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생각에서 오는 막막함 등 탈출 뒤에 조이가 느끼는 감정을 브리 라슨은 정말 세심하게 표현한다. 격하고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를 섬세한 연기로 관객들을 완전히 본인의 페이스로 끌어당기는 브리 라슨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제이콥 트렘블레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연기를 해낸다. 사실 <룸>은 제이콥의 시선을 따른 영화이다. 영화 내 단 한 순간도 제이콥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없다. '룸'에서 어머니 조이를 대하는 데, 룸을 빠져나간 뒤 만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있어서 본인의 감정과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반응을 정말 영리하게 해낸다. 인상적인 지점 중 하나는 브리 라슨과 정반대로 룸에 갇혀있을 때에 모습이다. <룸>에서 순진하게 닉(숀 브리저스)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지점이나, 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연기, 더 나아가 어머니의 절박한 표정에 어쩔 수 없이 하는 데서 나타나는 표정의 섬세함은 대단하다. 가장 제이콥 트렘블레이가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탈출에 성공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TV 속의 가짜 강아지와 사람만 믿는 잭이 실제 사람과 실제 강아지를 맏딱드리는 데서 오는 설렘과 충격을 동시에 얼굴에 담아내는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모습은 자못 충격적이다. 초반 '룸' 내부에서는 급박한 상황 변화에 따라 반응하는 섬세한 표정 연기로 관객들을 영화에 집중시킨다면, 그 이후에는 '룸'에서 느끼지 못했던, 익숙하지 않은 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부담감에서 점차 타인의 시선에 적응해가며 하나하나 반응하는 모습으로의 미묘한 내면 변화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어린 나이지만 연기는 상당히 깊었다.


룸2.jpg 이 두명의 연기, 영화관에서 탄성을 짓게 만든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섬세한 각본, 매력적인 캐릭터

<룸>에서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은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이 영화에서는 몇 차례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정말로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으로 파커라는 이름의 흑인 여자 경찰(아만다 브루겔)이 잭을 구출하고 그 구출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토대로 '룸'의 위치를 추측하는 꼽을 수 있다. 결국 파커의 활약을 통해서 조이를 구하는 데 성공한다. 이 장면에서 파커라는 캐릭터는 영화 내에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앞에서 잭의 말을 못 믿는다며 헛소리를 해대는 남자 경찰 보고 조용히 하라고 하면서 맥이 빠져있고 힘들어하는 잭이 말하는 것을 참을성 있게 유도하고, 더 나아가 제대로 말할 수 있도록 계속 기다리고 도와준다. 한 능력 있는 인물이 어떠한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본인의 진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모습을 그 장면에서 정말 매력적이게 그려낸다. 심지어 몇몇 관람객들은 파커라는 캐릭터를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로 꼽기도. 물론 아만다 브루겔이 이러한 캐릭터를 인상적인 연기로 더 흥미롭게 만들었다.


<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섬세한 각본이다. 특히 주인공들의 감정을 묘사할 때 허투루 묘사하는 법이 없고, 더 나아가 이렇게 섬세하게 설계된 장면을 통해 전해지는 감정이 상당히 복합적이라는 점에서 각본이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어도 게으르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우리가 '룸'에 갇혀있다고 가정할 때 상상할 수 있는 감정을 넘어서,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룸에 갇혔을 때 어머니로서, 그리고 어린아이로서 실제로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설득시킨다. 왜 잭에게 조이는 바깥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는지, 그리고 그 사실로부터 느끼는 조이의 비애감과 아무것도 모르면서 룸에서 조이와 재미있게 보내는 잭의 모습 등이 잘 상상하기 어려운 지점까지 영화가 도달한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007 Amanda Brugel as Officer Parker  M00057.jpg 이 경찰관님 상당히 매력적이다. 사진 출처:http://joesmoviestuff.blogspot.kr/2016/03/room-2015.html

튀지 않지만 차분한 연출

이 영화에서 연출은 '특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창의적이고 특색 있는 연출은 선보인다기 보다는 오히려 차분하고 섬세한 연출은 선보인다. 자극적이고 빠른 편집을 내세운다기 보다는 약간은 느리게 느껴지더라도 온전히 한 주인공의 감정을 보여주는 데 조금 더 집중한다. 작가로서의 야망이 느껴진다기 보다는 두 배우를 잘 돋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서포터의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여러 부분 잭의 시선으로만 이루어진다. 조이, 낸시, 닉, 그라보스키 등등 한 인물을 그려낼 때 가장 많이 의존하는 수단이 바로 잭의 시선이다. 잭이 어린아이이고, 더군다나 '룸'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 지냈기 때문에 인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출이 오히려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연기를 더 돋보이게 하면서 영화의 맛을 한 껏 살린다. 특히 브리 라슨의 연기가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님의 연출과 만나서 큰 시너지를 이룬다. 브리 라슨이 '룸'을 탈출하고 난 이후에 보이는 히스테릭한 모습이 우리를 더 안타깝게 만드는 이유 역시, 브리 라슨을 특별하게 불쌍하게 그리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그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준 연출 때문이다.


f룸4.jpg 섬세하게 감정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 레니 에어브래햄슨 감독.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룸> 수작이다. 깊은 감정 연기를 요하는 각본을 훌륭한 배우들이 섬세한 연기로 소화해내고, 그 모습을 차분하지만 침착하게 감독이 잘 담아낸다. 영화를 구성하는 그 누구도 다른 곳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완성도 있는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배우, 각본가 그리고 감독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작품이랄까. 꼭 한 번 관람하시기를 권한다.


2016.04.03

어쩌다 예매한 열한 번째 영화 <룸>

영화 읽어주는 남자 조현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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