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과 연출이 조화를 이룬 모범적인 전기영화의 표본
사실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은 정말 영화 화 혹은 드라마화 되기 정말 좋은 인물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그의 삶을 아는 대다수의 사람은 동의할 것이다. 애플이라는 거대한 회사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포함한 그의 드라마틱한 일생은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입양되어 자라 대학교를 중퇴하고 워즈니악을 만나 애플을 설립하고, 키워내지만 이후에 본인이 설립한 회사에 본인이 해고당한다. 그리고 경쟁사 NEXT를 만들어 애플이 인수하게 끔 상황을 만들고 본인이 다시 애플의 수장으로 복귀해 아이폰, 맥북, 그리고 아이팟 및 아이튠즈라는 거대한 하나의 IT 생태계를 구축한다. 요약해서 써보니 정말 실로 대단한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일대기를 모두 다루지 않는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이 영화의 존재를 유의미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이다.
이 영화는 크게 보자면 3막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스티브 잡스 (마이클 패스밴더 역)가 매킨토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전 상황, 두 번째 장에서는 NEXT 교육용 PC 프레젠테이션 전 상황, 마지막 장은 iMac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전 상황이다. 이런 방식으로 한 인물의 모든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그 인물의 일부분만 다루는 것을 통해 이야기는 더 밀도 있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즉, 전기 영화라는 사실에 함몰되지 않은 채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관련이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다루지 않는다. 단순하게 보자면 스티브 잡스가 성취를 얼마나 중요시 여겼는가에 대한 여부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나 에피소드는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 하면 가장 떠오르는 연설 장면은 영화 내에 단 한차례도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밀도 있는 각본을 통해 이 영화는 전기 영화가 흔히 범하는 오류를 영리하게 피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짜임새 있는 주제 의식이 명확한 극 영화로서 존재한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각본이 정말로 칼 같달까. 이는 <스티브 잡스>의 가장 큰 장점이자 정말로 대단한 성취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인물을 신격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의 전기 영화가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오류이지만, 이 영화는 한 인물을 계속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 인물로 다루지 않을 뿐더라 보통의 영웅 소설의 구조를 따르지도 않는다. 영화 초반부에서의 스티브 잡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물에 대한 동정심이나 연민, 응원의 감정보다는 인간적으로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딸과 전 여자친구에게 정말로 인간답게 대하지 않는 모습, 앤디 허츠펠트 (마이클 스털버그 역)에게 인간적인 모욕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렇게 까지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주인공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보다 더 큰 것이다. 입지전적인 인물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이런 이야기 방식은 상당히 새로웠다. 인물의 이면을 다룬 이야기이기에,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 이기에 매력적이고 관객을 더 잘 흡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물의 이면이 어떻게 스티브 잡스가 전자기기에 있어서 극강의 성취를 이뤄냈는가를 잘 보여주기에(증명하기에) 비단 이 인물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스티브 잡스에 성취와 발전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응원하는 면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스티브 잡스에게서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가 비단 각본만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대니 보일은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와 완벽히 조응하는 연출을 선보인다. 우선 영화 <스티브 잡스>는 화려하다. 컷 길이도 짧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영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화려한 장치가 존재한다. 우선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교차편집인데, 2 막에서 존 스컬리 (제프 다니엘스 역)와의 언쟁을 벌일 때 스티브 잡스가 해고당할 때 벌어지는 언쟁이 교차 편집된다. 이는 존 스컬리와 스티브 잡스와의 갈등을 더 깊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둘 사이의 대화에 훨씬 더 집중하게 만든다. 또한 인상적인 몇 가지의 인서트 컷이 영화를 더 재기 발랄하게 만든다. 영화 초반 부에서 빨간 의자들을 풀샷으로 잡는 장면이나, 혹은 중반부에 나폴레옹 사진이 인서트로 들어가는 장면들은 영화를 좀 더 통통 튀게 만들어준다. 또한 짧은 컷 길이는 영화의 서스펜스를 증폭시킨다. 특히 대화 장면에서의 빠른 화면 전환은 영화를 보는 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능수능란한 자막 사용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중간에 간간이 등장하는 효과음은 영화 전반의 서스펜스를 한껏 끌어올린다. 특히 대화 장면에서의 효과음은 대화 자체의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 물론 단순히 연출이 화려하다는 것이 한 영화의 장점이 될 수 없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및 영화의 소재와 연출이 맞아야 좋은 연출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잡스의 굴곡이 있는 삶과 화려한 연출이라는 딱 맞는 옷을 입는 것처럼 잘 어울린다. 형식과 내용이 일치한다고나 할까.
<스티브 잡스>의 또 다른 성취는 바로 배우들의 연기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마치 실제 그 인물을 보는 것 같은 생동감이 있다. 스티브 잡스 역을 맡은 마이클 패스밴더는 시종일관 절제된 모습으로 스티브 잡스를 본인 만의 느낌으로 재창조했다. 보고 있으면 정말 대단한 연기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다. 오스카에서의 좋은 소식을 기대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디카프리오 보다 패스밴더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조안나 호프만 역의 케이트 윈슬렛은 천재적인 인물 옆의 인간적인 조언자로서 일반 관객이 영화에 마음을 더 잘 이입할 수 있도록 편안하게 연기한다. 스티브 워즈니악 역의 세스 로건은 실제 스티브 워즈니악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우선 생김새가 비슷하다. 비슷한 생김새와 더불어 마이클 패스밴더와의 격양된 대화 장면에서도 에너지가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힘 있는 연기를 한다. 존 스컬리 역을 맡은 제프 다니엘스는 코미디 배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진지한 모습으로 패스밴더와 설전을 벌이는 데, 설전을 벌이는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본인의 연기에 관객을 흡입시킨다. 하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연기자는 5살의 리사를 연기한 메켄지 모스라는 배우이다. 이 배우가 이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대단하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아빠에 대한 사랑, 아빠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데서 온 비애, 아빠가 자신의 이름을 컴퓨터에 붙였다는 것에 대한 행복과 자랑스러움,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데서 온 실망감과 슬픔이라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연기로 아주 풍부하게 잘 보여준다. 메켄지 모스가 나온 몇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 배우가 앞으로 얼마나 더 풍부한 연기를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에 사로잡힌다.
각본, 연출 그리고 연기라는 영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세 요소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정말로 상당하다. <스티브 잡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러한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 사로잡힌다. 실로 정말 보는 즐거움이 있는 영화이다. 비록 지금 여러 영화관에서 막을 내렸지만 꼭 한번 보시길 바란다. 약 2주 뒤에 <어쩌다 예매한 E열 16번>이라는 내가 참여하고 진행도 가끔 하는 팟캐스트에도 <스티브 잡스>에 대한 리뷰가 공개될 것이니 한 번 들어보시면 이 리뷰의 내용이 조금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다.
2016.02.09
"어쩌다 보게 된 세 번째 영화" 스티브 잡스
영화 읽어주는 남자 조현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