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본질을 고민해보다.
최근 고려대학교 중앙영화연구회 돌빛 소속이었던 한 선배와 술을 간단하게 한 잔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선배와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참 배우고 얻어가는 것이 많다. 영화에 대한 지식이 정말 풍부할뿐더러 인격이나 성격적인 측면에서도 내가 본받아야 할 점이 많은 선배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선배와 맥주를 한 잔 하고 헤어지면서 대략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서야, 너는 만약에 어떤 배우가 CG로 연기상을 타는 게 어떻다고 생각해?"
"CG요?"
"그래. 예를 들어 칸 영화제에서 어느 배우가 한 작품에서의 연기에 대해 극찬을 받고 여우주연상이나 남우주연상을 탔다고 생각해봐. 근데 감독이 어쩌다 밝히는 거지. 연기력 칭찬을 받은 장면이 사실은 CG라고. 그렇다면 그 배우한테 상을 주는 게 맞는 걸까?"
"음... 글쎄요. 어쨌든 연기상은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 받는 게 맞는 거니까. 상 회수까지는 몰라도 엄청난 논란이 되겠죠?"
"그래. 아마 시상식의 권위에 대한 논란부터, 그 배우에 대한 논란까지 일어나겠지. 그래도 나는 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이어진 내용은 이랬다. 아카데미, 칸, 베를린 등 여러 영화제를 살펴봐도 남우주연상이나 여우주연상, 조연상 (이제 이 유수의 상 이름을 "연기상"이라 통칭하자) 같은 "연기자"에게 주는 상도 영화의 작품성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같이 작품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영화에서 아무리 연기를 잘하더라도 칸이나 오스카에서 상을 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제 아무리 연기상이라도 단순히 연기에만 평가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깝게 보자면 의상, 음향, 각본, 그리고 연출까지 연기에 다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연기상은 비단 오직 연기자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그렇다면 CG도 도움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의미 있는 문제 제기인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최근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논란이 가열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각본, 연출, 의상 같은 간접적인 요소, 즉 연기에 도움을 주는 요소가 연기에 영향을 끼쳤다면, 이제는 직접적으로 "연기" 그 자체를 보완, 수정해 줄 수 있는 요소까지도 연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도움이 가능해진 것이다. CG로 눈물, 눈 밑 주름, 미묘한 표정, 감정 표현, 입술의 떨림까지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보자. 정말 다시 연기를 재창조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과연 이러한 재창조된 연기로 배우가 평가받아도 되는 것일까?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조연상 등을 재창조된 연기에 수여하는 게 공정한 것일까?
우선 이 논란을 분석해보자면 "영화"라는 게 어떠한 성격을 가지는 예술 작품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영화에서 중심인물은 감독이고, 감독은 여느 예술 작품의 작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주장은 <까이에 뒤 시네마>(1954, 1)라는 영화비평 전문잡지에서 프랑스 영화감독인 프랑수와 트뤼포가 발표한 영화 이론으로 "작가주의"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영화 제작은 여느 예술 작품의 창조와 동일한 것이며, 예술 작품의 창조에는 작가의 개성이 반영되어 있어야 하다는 의미이다 (까이에 뒤 시네마, 1954). 이는 결국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는 감독의 의도와 개성을 반영하기 위해서 활용된다는 것이다. 즉, 영화의 여러 구성 요소가 잘 활용된다는 것은 활용된 요소가 감독의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설사 연기가 우리가 보기에 어색하더라도, 그것이 감독의 표현에 적합하다면, 그 연기는 좋은 연기인 것이다. 결국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좋은 배우와 좋은 연기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잣대는 존재하지 않으며, 가장 좋은 연기와 배우는 감독의 의도를 가장 잘 담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영화에서 연기라는 요소는 감독이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영화적 도구 중 하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개봉해 화제가 된 양병간 감독의 <무서운 집>을 보자. <무서운 집>에서 구윤희 배우님의 연기는 흔히 "발연기"라 칭할 만큼 엄청나게 어색하다. 행동은 과장되었고, 대사 처리는 책 읽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양병간 감독님께서 의도하신 느낌과 의도를 고려해 보면 구윤희 배우님의 연기는 오히려 "명연기"라고 칭해야 한다. 양병간 감독님은 이 영화에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행동과 대사를 더 오버스럽고 작위적이게 느껴지도록 연기 지도를 했다고 한다. 결국 구윤희 배우님의 연기는 감독님의 의도에 정확히 부합하는 연기인 것이다. <무서운 집>에서 구윤희 배우님의 연기는 "명연기"인 것이다.
CG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결국 "작가주의" 이론을 차용해서 분석해 보자면 컴퓨터 그래픽이 포함된 연기 더라도 감독의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했다면 그것은 정말 좋은 연기인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이 포함되었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간단하게 감독이 표현하려고 하는 바를 정말로 잘 표현했는가 라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그것은 최고의 연기인 것이다. 결국 CG도 연기와 같이 감독의 개성을 표현하려는 한 가지 수단이고 그것이 배우에게 끼치는 영향이 매우 직접적일 지라도 본질적으로는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인 의상과 음향 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CG을 사용했을지라도 감독의 의도를 잘 표현했다면 그 배우는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을 탈 자격이 있는 것이다.
기술이 점점 발달할수록 CG는 점점 더 고도화되고 전문화될 것이고, 점점 전문화될수록 컴퓨터 그래픽이 영화에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넓어질 것이다. 앞으로 20년 내에 연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때 아주 가열찬 논쟁이 벌어질 것이고, 이 글은 성지가 되기를 한 번 희망해 본다.
2016.02.09
연기상의 존재를 통해 영화를 보다
영화 읽어주는 남자 조현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