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읽남의 전주국제영화제 작품 리뷰-2부

4월 29일부터 5월 2일까지, 총 4일간 12편의 기록.

by 조현서

약속을 또 못 지켜서 죄송합니다. 다시 변명의 연속이네요. 변명을 하자면 나홍진 감독님의 <곡성> 팟캐스트 방송을 준비하느냐 시간에 쫓겨 리뷰 글이 조금 늦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 주말에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리뷰를 올릴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각설하고 바로 리뷰 들어가겠습니다.


영읽남이 본 작품

<올드 데이즈>, <앙겔레스쿠 가족>, <라디오 드림즈>, <액터 마르티네즈>, <플랜타스>, <슈나이더 대 백스>, <맨 앤 치킨>, <네이키드 청춘>, <클랜>, <단식광대>, <더 클럽>, <최악의 여자>


1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별점을 매기겠습니다. 사실 영화를 별점이라는 천편일률적이고 영화의 다양한 부분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는 체계로 분류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지만, 별점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직관적이고 받아들이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간단한 리뷰이기 때문에 보충하는 자료로서 별점을 첨부하는 것이 꽤 괜찮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별점은 ☆가 최저점, ★★★★★가 최고점입니다.


7. 맨 앤 치킨(Men & Chicken)

201603271818121578.jpg 사진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감독: 안데르스 토마스 옌센 (Anders Thomas JENSEN) / 장르: 극영화

생부가 아님을 밝히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충격을 받은 가브리엘과 엘리어스는 생부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 설렘도 잠시, 배다른 형제들이 생부와의 만남을 철저하게 차단하자, 두 형제는 더 큰 비밀을 감지한다.


별점: ★★★☆

한 줄 평: 중간중간 터지는 실소와 마지막에 예상은 가지만 충격적이고 소름 돋는 결말.


<더 헌트>,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등 여러 수작의 주연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덴마크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인 메즈 미켈슨이 한 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는 영화로 화제인 <맨 앤 치킨>은 블랙코미디로서의 존재 의의를 충분히 증명해낸다.(나는 사실 초반 부에는 동일한 배우인지도 몰랐다.) 본인들의 정체성을 파헤치는 엘리아스(메즈 미켈슨)와 가브리엘(다비드 덴칙)의 기묘한 모험을 그로테스크하게 담아내면서도 그 순간순간의 유머를 잃지 않는다. 결말로 치닫는 과정에 대한 공포감과 그 순간순간의 유머러스함 때문에 혼란스러운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로테스크하고 파격적인 결말을 목도한 데서 온 충격 속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관객 스스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존재를 인식할 때 색안경을 무의식적으로 끼지 않는가는 생각이 들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로테스크한 블랙코미디로서 유머와 분위기, 그리고 주제 의식까지 빠지지 않고 챙긴 좋은 영화.


8. 네이키드 청춘(The Smell of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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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래리 클락 (Larry CLARK) / 장르: 극영화

에펠탑 건너편의 돔에서 모인 여섯 명의 친구들은 약에 취해 실없는 장난을 치며 무의미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무료함, 눈먼 돈, 인터넷의 익명성- 이 셋의 끔찍한 조합이 그들의 세계를 산산조각 낸다.


별점: ★★★

한 줄 평: 영화에서 냄새난다.


쓰러진 홈리스 노숙자를 아무렇지 않은 듯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뛰어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그 장면과 상징적으로 동일한 장면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폰 섹스, 섹스, 마약, 매춘으로 가득한 그들의 한 없이 가벼운 일상을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매춘 장면과 성교 장면은 거의 최고 수위라 봐도 무방하다. 그들의 성교 장면과 매춘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한 줄 평에 쓴 정도로 영화에서 냄새나는 느낌이 날 정도이다. 특히나 주인공의 어머니 캐릭터는 역대급. 하지만 왜 그들이 그러한 삶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영화가 제대로 된 답을 하지는 못한다. 물론 이 지점은 래리 클락 감독님의 선택으로 보이지만, 영화 결말 부분을 생각해보면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은 선택은 장점보다는 단점애 가깝다. 단순히 현 층위를 보여주는 것 그 이상으로 넘어가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현상을 통해서 무언가를 함의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 지점까지 도달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만 남는 것은 많이 없는 아쉬운 영화.


9. 클랜(The C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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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파블로 트라페로 (Pablo TRAPERO) / 장르: 극영화

푸시오 일가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 이야기는 80년대 초 아르헨티나 국부 독재의 말년과 민주주의의 태동을 좇는다.


별점: ★★★★

한 줄 평: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법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에 빛나는 <클랜>은 한 가족의 이야기로 여러 가지 의미를 함의하는 좋은 영화이다. 푸시오 일가의 비밀이 하나둘씩 벗겨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시시 때때 변하는 가족의 역학 관계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 변하는 역학 관계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오히려 영화가 계속되면서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 본인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가족이 몰락하는 와중에서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당화와 합리화는 비단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의 말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2016년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생각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가족이 파탄 나는 상황 속에서도 '내가 틀렸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관객들에게 매우 성공적으로 설득시킨다.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을 성공하지 못한 것이 어떤 파국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보고 있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반성하게 된다. 뚜렷한 주제의식을 유려하게 드러내는, 잘 만들어진 수작.


10. 단식 광대(Artist of F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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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아다치 마사오 (ADACHI Masao) / 장르: 극영화

카프카의 작품은 수많은 해석과 변주를 통해 그 세계관을 확장해왔다. 단식 퍼포먼스를 업으로 삼는 남자를 다룬 단편 「단식 광대」를 현대 일본 배경으로 재현한 이 작품은 일본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별점: ★★★★

한 줄 평: 국가가 얼마나 한 개인을 타자화, 도구화, 대상화할 수 있는 가에 대한 보고서.


한 남자가 단식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단식광대>는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일품이다. 우선 영화를 보면 웃음이 나오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단식을 하는 예술가를 바라보는 여러 관객들을 포함한 기괴한 의사, 군인, 등등 여러 계층의 사람이 과장되고 기괴한 설정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폭소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폭소의 이면을 살펴보면 뒷골이 서늘해진다. 정부 관리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단식광대'가 인기가 많아지자 그를 상품화하는 모습과 그가 지탄을 받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그를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장면은 그 기괴하고 소설같은 영화의 세계관 속에서 날카롭게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정부를 상징하는 또 다른 인물인 군인이 단식 광대를 추종하는 소녀를 양아치들이 끌고 가서 강간해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장면, 즉 정부가 본인의 소임을 다하지 않는 모습은 최근에 일어난 어떤 사건을 떠오르게 만든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서 영화를 다시 떠올리면 영화 내에서 등장했던 여타 다른 상징들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의 웃음과 그 이면의 소름 돋는 상징을 잘 조화한, 성공적인 수작.


11. 더 클럽(The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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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파블로 라라인 (Pablo LarraIn) / 장르: 극영화

해안가 외딴집엔 한 명의 수녀와 여러 명의 수상한 신부들이 함께 살고 있다. 일체의 기도를 하지 않는 이들 앞에 새로운 신부가 나타나자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가톨릭 교회는 조사원을 파견하기에 이른다.


별점: ★★★☆

한 줄 평: 공동체 속 자기합리화의 향연


소아성애자인 신부들이 함께 사는 집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더 클럽>은 특유의 서스펜스가 일품이다. 진상을 파악하려고 온 마지막 신부에 의해서 이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 신부의 자격을 상실한 소아성애자라는 것을 관객이 알게 되는 순간 어떻게 영화가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의 긴장감이 꽤 쫄깃쫄깃하다. 그 긴장감 속에서 각각의 인물의 자기합리화를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범죄자들의 자기변호를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자기합리화가 단순히 이러한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실제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해당된다는 점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본인 스스로의 죄를 부정하는 가운데 각자의 인물이 택하는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기에 러닝 타임 동안 관객들을 붙잡는 힘이 있는 영화이다.


12. 최악의 여자(Worst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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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종관 (Kim Jongkwan) / 장르: 극영화

소설 속 인물을 궁지에 몰아 비극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 료헤이는 소설 출간 기념회에 맞춰 서울에 오게 된다. 서울에 온 날 그는 자신의 소설처럼 곤경에 처한 여자, 은희를 만나게 된다. 관계를 통해 인물의 감수성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영화.


별점: ★★★★★

한 줄 평: 진심을 다할 줄 모르는 남자와 진심을 다하지만 진실 속에서 살지 못하는 여자가 운명적으로 만나다.


우선 말하고 싶은 점은 나는 결코 별점에 후하지 않다. 내가 본 약 400편의 영화 중 별 다섯 개를 받은 영화는 열 개가 조금 넘는다. 하지만 <최악의 여자>는 별 다섯 개의 가치가 충분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는 항상 진심을 다하지만 진실로서 사람을 대하지는 못하는 여자, 자신의 자의식의 발현인 소설을 쓰지만 소설에 진심을 다하지 못하는 남자, 그리고 진실을 말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모르는 또 다른 남자, 그리고 진심을 다하지 않는 남자까지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같은 한 여자를 두고 서로 다른 두 남자가 여자와 대화를 해나가는데, 각각의 남자들이 전부다 특징이 다른데서 오는 재미뿐만 아니라 여자가 왜 진심이자만 진실로 그들을 대할 수 없었는지를 깔끔하게 설득시킨다. 그리고 서로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서로에게 부족했던 지점을 운명 같은 만남을 통해 고쳐나가는 장면도 참 아름답다. 마지막에 남산에서 서로 만나는 장면은 단연 최고. 거짓말을 일삼지만 순수한 여자와 진실만을 말하지만 진심을 다하지 못하는 남자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아주 아름답게 잘 담은 수작.


이것으로 <영화 읽어주는 남자>의 전주국제영화제 리뷰 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여자> 여름에 개봉할 가능성이 크니 다들 꼭 한번 보세요! 다음에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와 <곡성> 리뷰로 찾아뵙겠습니다.


2016.05.13

영화 읽어주는 남자 조현서 씀


*영화 읽어주는 남자 매거진은 매주 수요일 저녁에 업데이트됩니다.

*영화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하거나, 다른 접근을 원하신다면 제가 참여하는 <어쩌다 예매한 E열 16번> 영화 리뷰 팟캐스트를 추천합니다.

*팟캐스트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www.podbbang.com/ch/10315

*곧 새로운 매거진 '연극이 끝나고 난 뒤'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 외 '시집 자화상' 매거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및 댓글은 항상 환영입니다! 피드백 역시나 항상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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