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캐릭터들의 존재 가치를 관객들에게 훌륭하게 설득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 <아이언맨 3>이라는 작품이 나온 이후로 나는 마블이 점점 질적으로 향상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조악한 완성도와 허술한 전개는 내 확신을 시험했다. 하지만 <앤트맨>이라는 작품의 등장은 내 확신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했다. 이번에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역시 내 확신을 빗나가지 않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야기가 깊이가 있는 영화라고 말할 수 는 없지만, 슈퍼히어로물로서의 매력을 충실히 갖추고 있는 모범적인 영화이다. 합이 잘 맞는 액션은 박진감 넘치고,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는 각자의 매력이 살아있고, 스토리의 개연성도 크게 어긋난 지점이 없기 때문이다.
상당히 영리한 액션 시퀀스(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대해 가장 많이 회자되는 부분은 바로 액션 시퀀스이다. 크게 세 장면이 등장하는데, 우선 첫 번째로는 와칸다에서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나탈리 로마노프(스칼렛 요한슨),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 팔콘(안소니 마키)이 수행하는 작전 속 액션 시퀀스, 두 번째는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모든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공항 액션 시퀀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리 주니어), 윈터 솔져(a.k.a 버키, 세바스찬 스탠),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가 펼치는 액션 시퀀스가 있다. 우선 첫 번째 액션 시퀀스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와 비슷한 지점이 많다. 우선, 타격감이 상당히 뛰어나다. 타격 액션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캡틴 아메리카와 나탈리 로마노프가 하는 타격 액션이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수가 없다. 게다가 타격 액션이 지루해질 때 즈음에 팔콘의 자유로운 활공과 스칼렛 위치의 초능력이 또 한 번 더 영상을 흥미롭게 만든다. 타격 액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단점을 다른 히어로의 능력을 사용해서 상쇄한다는 점에서 아주 영리하다.
공항 액션 시퀀스는 연출가인 조 루소와 안소니 루소 형제의 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면이 대단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수많은 히어로가 뒤엉켜 싸우지만 단 한 캐릭터도 허투루 쓰이는 법이 없다. 한 장면에서 열 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을 느낄 수 있지만, 영리한 연출을 통해서 이 지점을 유연하게 돌파해나간다. 각 한 컷 한 컷에 여러 히어로들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액션의 합을 맞추는 두 세명 정도만 화면에서 잡으면서 순간순간 각 인물의 합에 집중하게 만든다. 게다가 여러 인물이 등장함에도 한 그룹(두 세명 정도의 격투)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어지럽고 산만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게 만든다. 두 번째는 캐릭터들 사이의 능력치 차이가 느껴지지 않도록 액션을 설계해 나간다. 사실 호크 아이(제레미 레너)와 아이언맨의 능력치 차이는 상당하기 때문에 과연 수많은 히어로들의 전투를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상당히 큰 숙제이다. 하지만 루소 형제는 이를 성공적으로 해낸다. 각 캐릭터마다 그에 맞는 임무를 맡기고 시너지가 잘 나는 캐릭터 사이의 콤비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캐릭터에 능력치에 대한 물음을 종식시킨다. 특히 특별한 능력이 없는 호크 아이 같은 경우, 앤트맨(폴 러드) 혹은 스칼렛 위치와의 협력 플레이를 통해 본인의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특히 앤트맨과 호크아이가 합작해서 아이언맨을 공략하는 장면은 이 액션 시퀀스 중 백미이기도 하다. 여러 등장인물을 조화롭게 운영하고 모든 캐릭터의 매력을 다 어필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액션 시퀀스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움이 남는 지점인 마지막 액션 장면은 연출가의 취향이 묻어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타격 액션이 가장 부각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장면은 여타 다른 장치 없이 단순히 세 인물의 주먹 다툼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세 인물의 주먹 다툼으로 이루어진 액션 장면은 충분히 긴박감 있다. 아이언맨의 능력으로 캡틴 아메리카의 패턴을 분석해서 반격해 나가는 장면은 충분히 신선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과연 각 캐릭터의 매력을 충분히 드러내는 가에 대해서는 약간 회의적이다. 아이언맨의 액션에서 기대하는 지점이라면 날아다니면서 화려하게 상대방을 공략하는 것인데, 이 장면에서는 그 부분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캡틴 아메리카와 버키의 콤비플레이도 과연 특색이 있는가는 생각도 든다. 캡틴 아메리카와 버키만이 할 수 있는 액션인가에 대한 물음에 회의적이다. 그렇기에 전반적인 액션 시퀀스에서 눈에 띄는 지점이 많지 않다. 가장 눈길을 끌어야 할 마지막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지점이 많이 없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다.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군더더기가 없다. 깔끔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야기가 깊이 있지도 않다. 슈퍼히어로 등록법안으로 촉발된 히어로들끼리의 갈등을 다루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 상 몰입을 방해할 만한 큰 결점은 없다. 하지만,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흘러가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다. 우선, 과연 슈퍼히어로 등록법안이 과연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사이에 이렇게나 큰 갈등을 촉발할 만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미 실드라는 단체 밑에서 활동하고 있는 데, UN 밑에서 있는 것은 무슨 차이인가? 영화에서 그 둘의 차이에 대해서 별다르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빈틈을 아이언맨의 개인사와 캡틴 아메리카의 개인사로 메우는 데, 한 의제에 있어서의 개인의 생각에 대해서 깊게 묘사되지가 않다 보니, 그 개인사 조차도 힘을 잃는다. 결과적으로 슈퍼히어로 등록법안이라는 지점이 개인사에 묻혀버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 이것이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원작의 '초인등록법안'을 모토로 했다는 지점에서 큰 아쉬움이 있다. 초인등록법안에서 숭고하게 까지 보이는, 음지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히어로들을 위한 원작 코믹스에서의 캡틴 아메리카의 반대는 영화와는 다르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이슈(이 조차도 불완전한)에 대한 물음을 완전히 끝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다뤄진 듯 보이는 여러 가지 철학적인 이슈들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위에서 언급한 서사적 구조의 한계 때문에 그러한 이슈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변죽만 울린다. 버키의 존재에 대한 대립으로 보는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인간을 본질적으로 믿음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혹은 통제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립으로 볼 수 있는 자유와 질서라는 가치의 충돌이 이 영화에서 다루는 주된 주제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주제를 아우르는 소재인 슈퍼히어로 등록법안 자체의 특별함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제 의식도 주변을 건드는 데 그친다. 슈퍼히어로 등록법안이라는 영화의 소재가 좀 더 당위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이 소재를 토대로 좀 더 논쟁을 끌고 갔어야 한다.
그럼에도, 성공적인 캐릭터 소개
그럼에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아쉽다기보다는 잘 만들어진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영화에서 무려 10 명이 넘는 메인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데, 그 캐릭터들을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는 것은 상당히 대단한 연출이다. 더욱더 대단한 점은 새로운 캐릭터들이 단순히 '인상'을 남기는 것을 떠나 본인만의 '본질'을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영화 중반부에 잠시 등장하는 앤트맨과 스파이더맨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마음껏 표출한다. 블랙 팬서는 영화 전반에 걸쳐 본인 스스로에게 부여된 스토리라인을 소화하면서 본인만의 철학과 능력을 관객들에 효과적으로 설득시킨다. 기존에 나왔던 여타 다른 히어로들도 마찬가지이다.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지만, 그 시간 사이에 구성된 장면들은 그 캐릭터의 대표적인 특성을 설명하거나, 혹은 본인들의 생각을 설명하는 데 충분하다. 즉, 시간은 짧지만, 캐릭터의 핵심은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온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비교해보자면, 잭 스나이더와 벤 에플랙이 약 2시간 동안 실패한 것을, 루소 형제는 15분 만에 성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히어로 영화라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그 장르가 주는 한계 안에서 상당히 훌륭한 작품을 보여준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다양한 히어로들을 훌륭하게 저글링 하는 조 루소와 앤소니 루소 형제의 모습은, 앞으로 어벤저스 시리즈의 앞날을 밝게 하는 연출가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요약하자면,
마블 영화는 질적으로 향상한다.
2016.05.16
어쩌다 예매한 열세 번째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영화 읽어주는 남자 조현서 씀.
*영화 읽어주는 남자 매거진은 매주 수요일 저녁에 업데이트됩니다.
*영화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하거나, 다른 접근을 원하신다면 제가 참여하는 <어쩌다 예매한 E열 16번> 영화 리뷰 팟캐스트를 추천합니다.
*팟캐스트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www.podbbang.com/ch/10315
*곧 새로운 매거진 '연극이 끝나고 난 뒤'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 외 '시집 자화상' 매거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및 댓글은 항상 환영입니다! 피드백 역시나 항상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