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글리가 정글을 뛰어다니는 장면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비친다.
<정글북>은 이야기에 강점이 있는 영화이다. 애초에 입소문과 홍보는 장엄하고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 효과에 집중되어 있었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이 감탄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감탄스러운 컴퓨터 그래픽 효과를 유의미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 영화의 스토리이다. <정글북>은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범하는 실수인, 단순히 선역이 악역을 처치하는 스토리의 반복을 저지르지 않는다. 오히려, 모글리(닐 세티)가 겪는 여러 가지 모험을 통해서 모글리가 모호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통해서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에 훌륭하게 의미를 부여한다.
본인 스스로를 늑대와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하다.
모글리가 처음에 늑대 무리하고 함께 생활할 때, 본인을 스스로 늑대로 인식한다. 정글의 강령을 읊을 때 한치의 망설임이 없으며, 양어머니인 락샤(루피타 뇽) 역시 모글리를 다른 늑대들과 다르지 않게 대우한다. 게다가 인간으로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바기라(벤 킹슬리)와 아켈라(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는 '인간'으로서 늑대와 다를 수 있는 지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바기라는 흑표범이다.) 예를 들어, 나무를 타는 것을 늑대로서 지양하라고 아켈라는 말한다. 또한, 도구를 이용해서 물을 마시라고 할 때, 그것은 늑대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말한다. 모글리는 결국 본인만의 정체성을 추구하지 못한 채, 본인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없는 '늑대'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강요당한다. 강요의 결과, 영화 중반부까지, 본인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보다도 늑대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인정한다. 늑대로서의 정체성, 혹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혹은 제3의 정체성을 찾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쉬어칸(아드리스 엘바)의 위협을 받아 무리에서 쫓겨나가다시피 빠져나와 발루(빌 머레이)를 만나게 된 뒤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발루는 바기라와 달리 늑대와 인간으로서 늑대 무리와 다를 수밖에 없는 모글리의 성질을 인정한다. 본인의 식량인 꿀을 채취하는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용인한다. 즉, 본인을 길렀던 늑대 무리와 전혀 다른 상황을 발루는 제시하는 것이다. 발루와 함께 지내면서 본인의 능력을 발전시키고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즉, 억제되어있던 본인의 정체성을 점차 찾아나가는 것이다. 특히, 코끼리 새끼가 골짜기에 끼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코끼리 떼를 정글에서 본인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 구출하는 장면은 바기라와 아켈라와 지낼 때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고, 발루와 지내면서 스스로의 능력을 더 길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상황을 통해 바기라 역시 본인 종족과 모글리와의 필연적으로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을 인식한다.
정체성을 스스로 찾아 나가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이슈이다.
즉, 이전의 바기라와 아켈라는 모글리를 늑대化시켜서, 즉 늑대라는 정체성을 강요하는 방식을 통해서 모글리와 본인 종족 간의 화합을 추구했다면, 결말 부분의 부족의 모습은 모글리를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진 생명체로, 즉 다른 정체성을 가진 생명체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늑대의 정글 강령을 다 같이 외칠 때 외치다가 멈추는 모습이라던지, 나무를 타고 달리기 경쟁을 해도 그것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모습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모글리는 결과적으로 본인만의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일반적인 인간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없고, 늑대의 정체성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제3의 정체성을 찾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사회의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전에는 사회적으로 지탄받았던 LGBT 및 여러 사회적 소수자들이 사회가 정한 정체성이 아닌 본인만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과 모글리의 과정은 충분히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정글북>이라는 고전 애니메이션 속에서 현대 사회에서도 유의미한 과정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스토리를 구성한 점은 정말 대단한 점이다.
밋밋한 악당
하지만 악역인 쉬어칸의 활용은 아쉽다. 쉬어칸은 <정글북>에서 악역으로서 역할을 다할 뿐,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보기는 어렵다. 단순히 밀림에서의 사자의 모습을 그대로 차용했을 뿐, 그 이상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모글리의 아버지가 불을 활용해 쉬어칸에게 저항하면서 얼굴에 남긴 상처 때문에 모글리를 쫒는다는 설정이 존재하지만, 기존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사자의 이미지를 벗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악역으로서의 매력도가 영화 상의 다소 부실한 캐릭터 설정으로 인하여 다소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흐름 상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는 절대로 아니다. 스토리 흐름 상 안일하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는 수준이었다.
<정글북>은 훌륭한 CG 효과가 헛되지 않은, 오히려 CG 효과를 빛나게 하는 스토리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실사 같은 CG에 한 번 놀라고, 그 CG와 정말 잘 조응하는 닐 세티의 연기가 인상적이며, 그 연기와 컴퓨터 그래픽 효과를 효과적으로 잘 활용하는 스토리에 감탄한다. 물론 몇몇 아쉬운 점이 있지만, 영화의 감상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컴퓨터 그래픽의 활용을 앞으로 영화의 미래의 핵심 코드로 꼽는 자들이 많다. 모두 다 컴퓨터 그래픽의 효과에만 탐닉하고 집중할 때, <정글북>은 오히려 그들에게 스토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영화일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2016.06.27
어쩌다 예매한 열다섯 번 째 영화 <정글북>
영화 읽어주는 남자 조현서 씀.
p.s) 시험기간이라서 업데이트가 많이 늦었습니다. 앞으로는 계속 매주 월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영화 읽어주는 남자 매거진은 매주 월요일 저녁에 업데이트됩니다.
*영화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하거나, 다른 접근을 원하신다면 제가 참여하는 <어쩌다 예매한 E열 16번> 영화 리뷰 팟캐스트를 추천합니다.
*팟캐스트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www.podbbang.com/ch/10315
*곧 새로운 매거진 '연극이 끝나고 난 뒤'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 외 '시집 자화상' 매거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및 댓글은 항상 환영입니다! 피드백 역시나 항상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