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사랑과 죄책감의 교차

소년과 중년 여성의 격정적인 사랑 속에서 씁쓸한 사회의 단면이 보인다.

by 조현서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사실 나에게 가장 큰 의미가 있는 영화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내가 브런치에서 연재하는 매거진의 이름 '영화 읽어주는 남자'를 사실은 이 영화의 부제목인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소년 마이클(데이빗 크로스)이 한나(케이트 윈슬렛)에게 상냥하게 책을 읽는 장면에서 매거진의 이름을 착안했다. 소년 마이클이 책을 읽어주는 장면과 중년이 된 마이클(랄프 파인즈)이 책의 내용을 녹음해서 보내주는 장면은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 그 이상을 담고 있다. 마이클과 한나의 사랑이 고초를 겪는 상황 속에서 보이는 씁쓸한 사회상은 관객들을 먹먹하게 하는 것을 넘어서 많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주인공이 마주하는 씁쓸한 상황 속에서의 감정 변화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를 이끄는 주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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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사랑으로 시작한다. 지독한 열병에 걸린 마이클을 한나가 도와주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고마움을 표하려 찾아간 마이클은 밖에서 기다리다가 우연히 한나가 스타킹을 입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 모습에 매료된다. 이를 계기로 둘은 사랑을 나눈다. 처음에는 단순한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기 위함이라면,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면서 서로는 육체적인 사랑 그 이상의 교류를 하기 시작한다. 마이클은 한나를 위해서 읽어줄 책을 고르고, 성심성의껏 읽어준다. 그전에 만나자마자 섹스를 하는 둘의 관계에서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책을 읽어주고, 함께 여행을 가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도 보인다. 서로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마이클에게 한나는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존재가 된다. 그 순간, 한나는 마이클을 떠난다. 마이클은 이후, 영화의 첫 장면에서 언급되었듯이,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어놓지 못한다. 법대생이 된 마이클이 브리짓(제넷 하인)과 관계를 가진 후에 그녀의 곁에 머물지 못하는 것도 이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더 리더4.jpg 육체적인 사랑에서 정신적인 사랑으로 발전하는 두 사람.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죄책감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에서의 마이클이 영화 내 전반적으로 깨달아가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한나가 전반적으로 깨달아가는 감정은 바로 죄책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일한 경력 때문에 재판에 설 때 까지만 해도 한나는 마이클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물론 희생된 유태인에 대해서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학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스스로 잘못했는지, 잘못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했다. 그렇기에 법원에서 너무나 순진한 표정으로 '판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녀가 스스로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지점은 바로 시간이 흐르고 흘러 마이클과 재회하는 장면이다. 마이클은 그때 아우슈비츠에서 일할 때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냐 물었고, 한나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말한다. 그 대화를 끝으로 한나는 자살을 택한다. 이때 한나가 느낀 감정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유태인 희생자들에 대한 죄책감이다. 그렇기에 본인의 유산을, 적은 돈이지만 '죽음의 행군'에서 살아남은 소녀에게 남겼다. 그리고 그 생존한 소녀도 한나의 유언을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대한 것에 비해 더 진실하게 느낀다. 두 번째는 마이클에 대한 죄책감이다. 한나가 생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만 한 순간 자살이란 선택을 한 점은 바로 마이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마이클에게 정말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죽음으로 갚는 것이다.


더 리더5.jpg 한나는 두 가지의 죄책감을 겪는다. 유태인 희생자, 그리고 마이클.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사랑은 곧 배려

마이클이 한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세 가지로 제시된다. 바로 초반부에 사랑을 나누기 전과 후에 책을 읽어주는 것, 중반부 법정 장면에서 한나가 숨기는 비밀을 알게 되지만 고민 끝에 말하지 않는 장면, 그리고 후반부에 본인이 읽어준 책을 하나하나 녹음해서 한나에게 보내는 장면이다. 처음에 책을 읽어주는 장면은 마이클이 한나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는 결정적인 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책을 읽어주는 관계로 발전하면서 이전의 단순히 육체적인 사랑이라는 관계를 넘어서게 되기 때문이다. 법정 장면은 사랑하기에 배려하는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법정에서 한나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더 적은 형량을 받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더 빨리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은 이러한 선택을 하지 않고 한나의 비밀을 공개하지 않는다.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바로 배려이기 때문이다. 한나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사항에 대해서 그는 존중했다. 즉, 한나의 선택을 인정하는 것을 통해서 삶의 방식을 배려한 것이다. 마이클이 한나에게 읽어주었던 책을 하나하나 테이프에 녹음해 전달하는 것은 마이클의 사랑의 표현 중 백미이다. 어떻게 본인의 마음을 표현할까, 그리고 한나의 마음을 배려할 수 있을까라는 두 가지 물음을 한 번에 해결한 방식이다. 한나가 문맹이란 것을 알고 있고 문맹인 것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법원에서 확인했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삶의 방식을 존중함과 동시에 한나의 삶의 의지를 잇게 해 준 최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마이클 역시 모든 방면에서 한나를 배려한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후에 한나와 만났을 때 마이클은 한나의 아픔에 공감해주는 모습보다는 차가운 모습을 보인다. 물론 마이클은 한나에게 복합적인 감정이 있었지만, 즉 그녀가 지은 죄에 대한 원망이 존재했지만, 마이클은 한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만남에서, 마이크는 한나를 배려하지 못한다. 좀 더 한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 수는 없었을까? 결국, 수 차례 사랑에 따른 배려를 보여주는 마이크는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의 마음을 제어하지 못한다.



더 리더2.jpg 결국, 두 사람은 결과적으로 배려의 실패를 겪는다. 그 결과는 자못 비극적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시대상, 우리나라와도 밀접한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시간적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이고, 공간적 배경은 독일이다. 영화에서 한나는 나치를 위한 기업에서 일한 독일인이다. 하지만 한나는 문맹이다. 즉, 아무런 학습을 받지 못했고, 본인 스스로의 가치관이 정립이 되지도 않았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하기에 위에서 시키는 일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수행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마이클이 책을 읽어줄 때(지적 자극을 가해줄 때) 한나가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과연 한나는 법의 기준으로 처벌받아야 하는가? 영화 내에서는 법은 협소하며, 법은 도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처벌의 기준이 도덕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법은 정당한 통치 도구라고 말할 수 있는가? 도덕적이지 않다면 왜 법이 정당성을 갖는가?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이와 같은 법과 도덕, 그리고 법의 통치 대상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나라도 일제 시대의 아픔을 겪었던 나라로서, 과연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과연 나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일제 시대의 아픔을 그려냈지만 항상 그 시선은 비슷했다. 우리나라의 피해를 강조하고, 일본의 극악무도함을 강조하는 방식이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주목받지 못한, 대한민국의 '한나 슈미츠'를 다룬 영화가 나온다면 어떨까? 엄청난 논란이 되고 친일파 포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지만, 나는 일제 시대에 부각되지 못한 부분을 다루어야 일제 강점기에 대한 우리나라의 아픔을 더 잘 진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리더6.jpg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새로운 시선으로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다룬 영화가 나올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새로운 시선, 가슴 아픈 사랑

어느 순간,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우리에게 훨씬 더 유의미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 시선은 대한민국의 아픔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2016.07.11

어쩌다 예매한 열일곱 번째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영화 읽어주는 남자 조현서 씀.


*영화 읽어주는 남자 매거진은 매주 월요일 저녁에 업데이트됩니다.

*영화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하거나, 다른 접근을 원하신다면 제가 참여하는 <어쩌다 예매한 E열 16번> 영화 리뷰 팟캐스트를 추천합니다.

*팟캐스트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www.podbbang.com/ch/10315


*곧 새로운 매거진 '연극이 끝나고 난 뒤'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 외 '시집 자화상' 매거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및 댓글은 항상 환영입니다! 피드백 역시나 항상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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