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작과 경쟁 부문, 그리고 시간을 달리는 BIFAN

한여름의 판타지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리뷰- 1부

by 조현서

죄송합니다.

매주 월요일에 글을 써서 올리겠다는 저와의 약속이자 글을 봐주시는 분들과의 약속을 자꾸 어겼습니다. 이번에는 그래서 그 약속을 어기게 만든 가장 큰 주범에 대해서 써 볼까 하는데요. 바로 이번에 20주년을 맞은 부천판타스틱영화제입니다.


20th_BIFAN_Mainposter1.jpg 20주년을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풍성했다. 사진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

저는 이번에 한 번에 상영하는 단편 다섯 작품을 포함해서 총 스무 편의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판타스틱 단편 결작선 1: <비밀 실험>, <아버지와 아들>, <악마를 보았다>, <쿵 퓨리>, <웰컴 투 치킨 월드>

-나카시마 테츠야의 고백: <고백>,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불량공주 모모코>, <파코와 마법 동화책>

-개막작 & 폐막작: <캡틴 판타스틱>, <서울역>

-부천 초이스(경쟁부문): <포인트 제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다시 보는 판타스틱 걸작선: 시간을 달리는 BIFAN: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먼지아이>

-월드 판타스틱 레드, 월드 판타스틱 블루(비경쟁부문): <다다다다 세븐틴>, <더 소노 시온>, <소곤소곤 별>, <맨 인더 다크>, <미드나잇 스페셜>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꽤 많네요. 정식 개봉하지 않고 영화제에서만 상영하는 작품들과 거장들의 특별전을 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어서 영화제라는 축제가 참 매력적이게 느껴집니다. 영화 리뷰를 간단하게 할 생각인데 우선 <서울역>은 연상호 감독의 실사 작품인 <부산행>과 함께 할 예정입니다. 순서를 정해 보면,


-1부: "개막작과 경쟁부문, 그리고 시간을 달리는 BIFAN"

-2부: "나카시마 테츠야의 고백"(영화 <갈증>을 추가로 관람하고 작성할 예정입니다)

-3부: "월드 판타스틱 블루 & 레드"

-4부: "부산행과 서울역"


단편 작품들을 제외하고 총 2주에 걸쳐서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업로드합니다. 절대 늦지 않겠습니다. 순서는 바뀔 수 있습니다. 바로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저번 전주국제영화제와 다르게 별점을 매기지 않습니다.


"개막작과 경쟁부문, 그리고 시간을 달리는 BIFAN"

1. 캡틴 판타스틱 | Captain Fantastic / 감독: 맷 로스 Matt ROSS

캡틴 판타스틱.jpg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철인 키우기.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논의 가운데 시원한 웃음. 사진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

줄거리: 태평양 연안 북서부의 깊은 숲 속, 벤은 6 명의 아이들을 홀로 키우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산다. 야생의 자유를 뒤로 하고 도시의 삶으로 돌아오라는 세상의 압박은 집요하다. 결국 숲을 빠져나와 문명사회로 향하는 벤과 아이들. ‘남들처럼 사는 일’의 고단함과 ‘남들 같지 않은 삶’의 외로움 사이를 신나게 질주하는 한 가족의 성장 스토리가 그렇게 시작된다. 배우 출신 감독 맷 로스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 <캡틴 판타스틱>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하지만 쉼 없이 이어지는 코미디가 결국 당도하는 곳은 뭉클한 화해와 용서의 순간. 세대와 이념과 계급의 차이를 딛고 조금씩 인간의 온기를 회복해가는 이 영화의 여정은, 관객에게 매우 유용하고 기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비고 모르텐센과 아역 배우들의 반짝이는 연기 앙상블로 우리 시대 진정한 ‘판타스틱 패밀리’의 탄생을 보여준 작품. “<미스 리틀 선샤인>의 감성으로 만든 <허공에의 질주>”라 불러도 좋을 영화 <캡틴 판타스틱>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받았다.(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


현재 대다수의 사회에서 택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그 장점만큼이나 한계가 명확한 시스템이다. 모두가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효율성이 떨어지고, 소수끼리의 '플라톤의 철인' 교육은 지식 습득에는 효율적이지만 사회와 거리감이 있다. 어떤 방식이 더 나은가에 대한 논쟁에서 <캡틴 판타스틱>은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결말에서도 어떤 점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 논하지 않는다. 일견 '철인 교육'의 장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다가도 어느 순간 이 특별한 교육 방식 때문에 일어난 사건의 경과를 보고 있으면 교육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교육 자체의 단점보다는 소수끼리의 '철인' 양육 교육법을 보는 사회의 시선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현학적인 지식을 통한 유머는 시종일관 웃게 만든다. '철인' 교육을 받은 가장 어린 친구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나이의 친구보다 더 나은 지식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줄 때는 일견 통쾌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철인 교육' 내부의 가족사를 생각해 보았을 때는 안타까운 표정이 절로 든다. 민감한 이슈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문제의식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맷 로스 감독님의 서사와 연출이 인상적이다.


2. 포인트 제로 | Point Zero / 감독: 호세 페드로 굴라르 José Pedro GOULART

포인트 제로.JPG 성장영화. 설명할 부분이 많이 필요한 영화. 몽환적인 분위기 자체는 인상적. 사진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

줄거리: 15살 소년 에니오의 하루하루는 캄캄한 우주를 표류하는 우주인의 시간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차가운 아버지, 외로운 어머니, 그리고 이기적인 누나. 숨 막히는 집을 빠져나와 충동적인 일탈이 시작된 그날 밤, 에니오는 어떤 일을 겪게 될까? 브라질에서 온 기묘한 성장영화.(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


'성장 영화'는 정말 매력적인 소재이다. 주인공이 욕망을 가지고, 그 욕망을 실현시키는 과정 속에서 장애물을 만나고, 장애물에 굴복하면서, 혹은 극복하면서 주인공은 한 단계 사회적으로 성장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한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소노 시온 감독의 <노리코의 식탁>이 대표적인 '훌륭한 성장영화'의 예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바로 주인공의 욕망 실현이라는 줄거리뿐만 아니라 매혹적인 또 다른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스토커>에서는 그 요소가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맡은 인디아라는 캐릭터가 성적으로 매혹적일 뿐만 아니라 사이코패스스러운 잔혹함에 쾌감을 느낀다는 점, 그리고 니콜 키드먼이 맡은 이블린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묘한 긴장감이고, <노리코의 식탁>에서는 성장 영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족의 의미와 해체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 점이다. <포인트 제로>에서의 특별한 요소는 일탈을 한 이후 벌어지는 몽환적인 상황이다. 바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공상인가의 미묘한 경계에서 오는 긴장감. 하지만 과연 그 긴장감이 효율적인가, 또한 그 긴장감이 영화 상에서 매혹적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내 답은 물음표이다. 심지어 가끔 비현실적으로 묘사한 지점이 사건 전개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성장 영화'라는 일차적 목표는 무난하게 달성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아쉬운 작품.


3.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 If Cats Disappeared from the World / 감독: 나가이 아키라 NAGAI Akira

세상에서 고양이가.jpg 삶 그 자체의 중요성은 바로 삶의 소중한 추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 사진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줄거리: 죽음을 예고받은 불치병의 우편배달부에게, 악마는 생명을 하루씩 연장하는 대신 세상에서 없앨 한 가지를 정해달라 한다. 이 기묘한 제안으로 그는 과거의 친구, 애인, 가족과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날, 악마는 세상에서 고양이를 없애겠다고 말한다.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영화는 '삶'을 구성하는 '행복의 요소'의 소중함을 다룬 신파 영화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평가되기에는 억울한 작품이다. 우선 설정이 훌륭하다. 악마와의 만남을 통해 하루씩 연장되는 생명과 사라지는 존재에 따른 추억 소멸이라는 상황을 통해 생의 의지와 추억의 소중함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추억이 사라진 하루를 보내는 것을 통해서 추억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깨닫는 것이다. 연인, 친구, 가족 간의 추억이 하나하나 없어지는 과정에 대한 묘사도 훌륭하다. 추억이 사라지기 전 날의 만남과 사라진 다음 날 이미 바뀌어버린 삶의 대조를 통해서 안타까움을 배가시키는 방식은 감정적으로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게다가 한 가지 요소가 한 인간관계에 단순하게 대응되는 것이 아니라 한 소재가 여러 인간관계에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점은 이야기를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 단순히 예측이 가능한 일반적인 신파 영화를 넘어서는 또 다른 지점이다. 흔히 우리가 예측하는 서사를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스토리만으로도 흥미를 이끌어낸다. 흥미로운 서사와 깊은 파토스를 모두 갖추고 있는 수작.


4.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 The Kirishima Thing /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 YOSHIDA Daihachi

키리시마.jpg 영화 감독을 꿈꾸는 자라면 이 청년에 이입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

줄거리: 전도유망한 배구부 캡틴 키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두고 사라졌다는 소식이 퍼진다. 키리시마의 절친들, 그의 여자친구, 영화 제작 동아리 그리고 배구부 사이의 물고 물리는 사건들이 한 인물의 부재로 인해 커져가기 시작한다.(17회 넷팩상)(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


영화감독을 꿈꾼다면, 모두가 아는 영화인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은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재능의 한계라는 장애물이 존재함에도 그 일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왜 유의미한지를 아주 탁월하게 설득시킨다.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영화 제작부 마에다가 영화를 찍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본 히로키가 미래의 목표를 묻자 "영화감독이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라는 마에다의 답변, 히로키의 야구부 선배가 프로 제의 를 받은 적이 없음에도 매일 저녁마다 나가서 운동을 하는 모습, 그리고 키리시마의 대타로 카야타마가 계속 리시브 연습을 하지만 결국 스스로의 한계를 목놓아 외치는 장면은 언뜻 서로 상충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영리하게도 한 가지의 주제의식으로 귀결된다. 바로 행복은 결과보다도 과정에서 기인한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성공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다'라는 생각이 있는데, 그 생각을 적어도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한 동안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힘을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을 그만둔대>는 가지고 있다. 물론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한 청춘들에 대한 위로 역시 빼놓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에 히로키가 눈물을 흘리면서 나오는 장면은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본인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고, 좋아하는 것도 찾지 못했으며, 게다가 삶에 대한 가치관이 부재한 대부분의 청춘들이 그 반대의 인물을 직접 목도했을 때의 당혹감과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그 과정의 소중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한 상황'에 대한 위로를 동시에 건넨다. 이 세상의 모든 청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특별하고도 따듯한 시선을 건네는, 몇 안 되는 훌륭한 영화.


이것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리뷰 1부 "개막작과 경쟁부문, 그리고 시간을 달리는 BIFAN'을 마치겠습니다. 목요일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부 "나카시마 테츠야의 고백"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08.01

"개막작과 경쟁부문, 그리고 시간을 달리는 BIFAN"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리뷰-1부

영화 읽어주는 남자 조현서 씀


*영화 읽어주는 남자 매거진은 매주 월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영화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하거나, 다른 접근을 원하신다면 제가 참여하는 <어쩌다 예매한 E열 16번> 영화 리뷰 팟캐스트를 추천합니다.

*팟캐스트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www.podbbang.com/ch/10315

*곧 새로운 매거진 '연극이 끝나고 난 뒤'와 '나를 부숴나간다는 것(가제)'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 외 '시집 자화상' 매거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및 댓글은 항상 환영입니다! 피드백 역시나 항상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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