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 : 사과문
팟캐스트를 함께 한 인원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요리를 먹으면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나는 복학의 두려움에 대해서, 다른 멤버들은 취업의 어려움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와 음악으로 주제가 넘어갔고, 나는 켄드릭 라마의 내한에 대해 말을 꺼냈다.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너 힙합 좋아하는구나?
"너 힙합 좋아하는구나?"라는 말은 어떤 말이 이어지냐에 따라서 굉장히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단순한 취향에 대한 질문에서 공감까지, 혹은 선호에 대한 반대의견까지 이른다. 만약 뒤에 "나도 요새 자주 듣는데."라고 말한다면 질문의 의도는 공감이다. "난 힙합이 별론데."라는 말이 이어진다면 힙합에 대한 비선호이다. 이 질문을 나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곡해했다. 판단의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이지만, 의도를 후자로 파악했고, 질문을 "켄드릭라마는 즐겨 듣는 편이야."라며 우물쭈물 넘겼다. 다행히도 이 화두는 물 흐르듯이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물론 노래방에서 랩 엄청 많이 한다는 타박 아닌 타박을 들었지만, 그렇게 저녁 식사는 끝났다.
며칠이 지나 우연히 방구석에서 나한테 질문을 던진 친구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는 데, 힙합 노래를 듣는다는 스토리가 있었다. 순간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나는 의문스러웠다. "왜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한 거지?", "힙합을 안 좋아하는 데 그 노래만 좋아하는 건가?" 등등 의문이 잇대어 머릿속에 들고 일어섰다. 물론 한심하게도 당시 상황과 대화를 다시 떠올려보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물어봤다. 굉장히 무례하고 과했다. "뭐야 그래도 힙합 좋아하나 보네?"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무례하게 던질 때만 해도 나는 "이 노래만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앞섰다.
물론 정반대의 대답, 좋아한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한 인간을 단정 지었다. 이 친구는 단순히 취향을 물어봤지만, 나 혼자 의도를 곡해해서 관계없는 맥락으로 받아들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판단 착오가 있겠지만, 이처럼 명백한 판단 착오를 지각한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내가 한 인간을 내 마음대로 규정지은 것 아닌가? 완전히 명백하게 반대의 성향으로 단정지은, 심각한 잘못이었다. 적어도 한 번은 내가 당시 대화와 분위기를 다시 복기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다음 주 즈음에 그 친구를 만날 기회가 있을 텐데, 직접 사과하려고 한다. 혹시나 내가 그랬던 적이 있다면, 그것이 무례하게 느껴졌다면, 이 기회를 빌어 사과하고 싶다.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