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
나는 장이 튼튼하거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다. 배변활동이 굉장히 잦다. 진가는 술 마시고 난 다음 날에 드러나는 데, 일어난 지 두 시간이 채 되지 않는 데 화장실을 다섯 번 넘게 들락날락한다. 잦은 배변활동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일차원적인 쾌락이 온몸을 떨게 하지만 그 쾌락이 다섯 번 넘게 찾아오면 자괴감으로 변모한다. 꽤나 극적인 경험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5 단계설(Maslow's motivation theory)에 따르면 더 낮은 차원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더 높은 차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매슬로우의 위대함을 느끼면서도 고작 가장 낮은 차원의 욕구가 이렇게 양 극단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랍다.
누나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밖에서 화장실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배변활동을 하면서 쾌락과 수치심을 오가는 것이 꽤나 일상적인 경험이다. 집이 아닌 외부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자괴감이 더하다. 배 아파하는 모습을 누군가 목격할 확률이 크니까. 누나는 그런데 집 외의 화장실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누나하고 꽤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가끔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것부터 가족 여행까지 꽤 다양한 시간을 함께 했다. 24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나는 누나가 집 밖의 공간에서 화장실을 가는 걸 못 봤다.
이유를 모른 채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다니다가 입대했다. 생활관에 누워서 티브이 채널을 돌리는 와중, 나는 오랜만에 뉴스를 틀었다. 이러한 내용이었다.
여자화장실 몰카
내가 남자화장실을 이용할 때랑 전혀 다른 세상이다. 많은 구멍이 뚫려있는 화장실을, 구멍 사이로 초소형 카메라 렌즈가 보이는 화장실을 단연코 나는 경험한 적이 없다. 상상만 해도 불쾌하다. 수많은 눈동자가 화장실에 들어오는 나를 지켜보는 거 아닌가. 불쾌하고 무섭고 슬픈 범죄이다. 여성이 집 밖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불쾌한 시선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머리에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추측만으로도 불쾌함에 치가 떨리는 데, 직접 이 범죄를 대면하는 여성들의 두려움과 불쾌함은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이토록 추악한 몰카를 유통하는 사이트가 2018년에도 아무렇지 않게 운영되었다는 사실, 최근에야 폐쇄되었다는 사실, 셀 수 없이 많은 몰카 범죄자들이 솜방망이 처벌로 형을 종결짓는다는 사실,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실이 있다. 그 사실이 얼마나 한국사회를 견디는 여성들을 절망하게 했을까. 셀 수 없이 많은 사실과 가늠 조차 할 수 없는 절망과 두려움. 내 일차원적 자괴감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는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럽다. 누나가 집 밖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 사실이 머릿속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