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일상으로 끌어올리기
저번 달부터 한숨을 -진부한 표현이지만- 땅이 꺼져라 쉬었다. 정작 나는 몰랐다. 내가 한숨을 푹푹 쉰다는 걸 안 건 바로 어제였다.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단편 영화를 보고 나와 대학교 선배랑 잠시 대기하는 데, 대학교 선배가 나한테 말했다. 넌 뭐 이렇게 한 숨을 많이 쉬냐고. 한숨은 내게 일상이었다. 너무나 정기적으로, 자주 했기 때문에 뇌에서도 인식하지 못했다.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몇 시에 확인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왜 한숨은 내 일상이 되었나.
분명한 점은 한숨은 별로 건강에 좋지 않다. 최근 굉장히 기분이 우울했는 데, 일상적인 한숨 쉬기가 한몫했다. 우울해서 한숨을 쉬면, 그 행위로 인해 더 우울해지고, 또 반복하는 돌이킬 수 없는 톱니바퀴. 내가 더 이상 톱니바퀴를 견딜 수 없을 때 즈음에 담배를 피운다. 담배 한 모금으로 돌아가는 톱니바퀴를 잠시나마 유예한다. 유예의 순간-그 찰나-에 담배가 참을 수 없이 고맙다. 혼자 흡연할 때는 대부분 이 흐름이다.
왜 우울했는지 보다는 일상이 된 한숨을 비일상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먼저다. 비일상의 핵심은 인지다. 인지를 해야 판단이 가능하고, 판단 후에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할 수 있다. 모든 한숨이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는 않지만, 한 시간에 한 번씩 그 행위를 반복한다면 상황은 다르다. 우울증이라는 바다에 익사하고 싶은 감정이 가끔 필요하지만 자주 젖으면 젖을 때마다 힘들다. 몸과 정신이 어느 공간을 향해서 침전하는 느낌이다. 물놀이를 그만 하고 빠져나올 때이다. 오랫동안 물에 빠져있었던 이유는 다음 문제이다. 미장센에 같이 갔었던 대학교 선배한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