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 2018 봄 편에 부치는 감사.
아쉬가드 파라하디 감독의 <세일즈맨>의 여자 주인공 라나(타라네 엘리두스티 분)는 이사를 간다. 이사를 간 뒤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집주인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남편은 성폭행을 저지른 범인을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오히려 라나는 이 사건을 파헤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남편의 물음에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피의자의 얼굴을 기억하면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거짓말한다. 소극적인 대응을 넘어서 본인 스스로 사건을 묻으려 시도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나는 라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피의자를 뻔히 아는데, 자신이 스스로 사건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묻히기를 바랄까? 성폭행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당한다면, 고통을 가한 자한테 돌려주고 싶지 않을까? 함께 영화를 본 동아리 선배가 '고통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그냥 스스로 지워버리기를 바란 거 아닐까?'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왓차에는 '왜 여주인공이 신고 안 하지?'라는 평을 남겼다.
팟캐스트 녹음을 가는 길에 여성주의 교지 '석순'의 봄 출간물이 보여 다른 멤버를 기다리면서 읽었다. 나는 2년 전에 품은 내 의문을 10분간의 독서를 통해 해결했다. 301님이 쓰신 '그래도 피해자다'라는 글을 통해 왜 라나가 스스로 사건을 뭍고 싶었는지 어렴풋이 느꼈다. '그래도 피해자다'라는 글에는 나 같은 여러 사람의 취조를 Q&A 형식으로 담은 부분이 있다. 라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던진 여러 질문- '그 뒤로 왜 가만히 있었는가?', '왜 다음날에라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나?' 혹은 '사건이 해결되지도 않았는 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낼 수 있는가?' -에 대한 301님의 답변을 통해 그제야 라나를 이해했다. 순간이 너무나도 힘들고 불쾌했기 때문에,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는 담담한 답변, 그냥 지나가기만을 바랐다는 슬픈 답변, 너무 무서워서 성폭력 당하는 선에서 끝나면 다행일 거라 생각했다는 너무나 슬픈 답변.
나는 라나의 고통을 과소평가했다. 여성들의 고통을 내 기준으로 재단한 맨스 플레인이었다. 이제야 나는 피해자들, 넘어 여성들의 아픔과 그들의 선택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모든 인간은 자신 만의 대응책을 가지고 있고, 이는 존중받아야 한다. 석순 교지 봄 출간물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인간에 대한 이해를 확장했다. 페미니즘은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