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오기.
영화 <폭스캐처>에서 스티브 카렐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캐릭터 존 듀폰(레슬링 팀 코치)역을 맡아 소름끼치게 열연한다. 이 영화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룰 수 없는 성질의 무언가가 있다’ 라는 아주 당연한 명제를 다시금 내게 일깨웠다. 최근 <변산>의 래핑으로 화제인 배우 박정민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은 내용은 <폭스캐처>와 전혀 다르지만, 완전 정반대이지만 내가 느낀 바는 같았다.
나는 선천적으로 재미 없는 놈이다. 철 지난 아재개그에 피식하는 걸 참지 못하는 내 센스에, 그리고 그 개그를 남들에게 꼭 선사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미에 자괴감을 느낀 적도 여러번이다. 나만의 문제인가 싶었는 데 최근 운전 연습 중 아버지께서 선보인 몇 차례의 주옥같은 아재개그로 이게 비단 내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에는 큰 위안이었는데 점점 더 심각성을 깨닫고 있다. 핏줄의 문제라면 더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할 텐데...
<쓸 만한 인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유머이다. “당신이 지금 방황하더라도 존나 쓸모 있는 인간이에요.” 라는 위로를 다양한 에피소드와 유머로 유려하게 풀어낸다. 특히 책 첫 부분에 헬로비너스의 노래를 부르다가 아버지에게 들키는 상황은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뒷부분에 등장하는 자조섞인 소개팅 에피소드 및 기자와의 인터뷰 역시 웃음 타율이 굉장히 높다. 책을 읽으며 웃다보면 어느새 묵직한 위로가 다가온다. 아, 박정민은 대단한 작가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매일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글을 쓴다. 스티븐 킹도 마찬가지이다. 유시민은 자신의 능력과 이미지를 유감없이 발휘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썰전>을 책을 집필하기 위해 포기했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가. 글 쓰는 건 둘째로 미루더라도 사람을 웃게 하는 재치는 연마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근데 왜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