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만약 내가 말을 하지 못한다면

편측성 성대마비에 관하여.

by 조현서

빈지노의 노래 <If I die tomorrow>는 제목 그대로 내일 죽었을 때 마음을 담담하게 녹여낸 명곡이다. 삶에는 누구나 자신만의 굴곡이 있다. 삶이 곧 굴곡이다. 내 삶이 빈지노의 삶과는 다르지만, 서로 자신만의 굴곡이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삶의 가치는 같다. 삶의 동등한 가치에 대해서 누구도 고민을 피할 수 없다.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 방향은 옳은가. 방향이 옳다면 어떻게 발을 내디뎌야 하는가 등등. 고민 끝에 사람은 발자취를 남기고, 삶의 굴곡을 형성한다. 자신의 자취를 훑는 빈지노의 이 노래는 결국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의 자취를 반추하게 한다.

최근 목에 항상 무언가가 걸려있는 느낌이 점점 심해져서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내시경 장비로 목을 이리저리 훑으시더니 의사 선생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료 결과를 말씀하셨다.

한쪽 성대가 잘 안 움직인다.

병명으로 하자면 편측성 성대마비. 심각하지는 않지만 경과를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느낌이 묘했다. 성대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아득했다. 의사 선생님께 말 못 하는 건 아니냐고 바짓가랑이를 잡으면서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괜스레 집에서 편측성 성대마비를 한 시간 가량 검색했다. 당연하게도 음성장애가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지만 나는 심하지 않아서 아직 경과를 지켜보는 단계이다. 아직 말하는 데 아무런 이상이 없다. 하지만 마음은 계속 불안했다. 말 못 하면 어떡하지.

말하는 게 꼭 필요한 내게 소중한 걸 떠올려봤다. "어쩌다 예매한 E열 16번" 팟캐스트 녹음, 녹음과 그 이후 커피와 한바탕 수다, 혹은 간단한 술 한잔과 수다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앞으로 녹음 못하겠네, 미리 고별 멘트를 녹음해야 되나?", "뒤풀이 자리는 좀 조용해지겠다." 그리고 가족과 주말에 다 함께 하는 점심 식사도 생각났다. 만약 내가 말을 못 한다면 식사 때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겠지. 나 때문에 분위기가 다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수많은 소중한 인연들과의 만남이 떠올랐다. 결코 예전처럼 지낼 수는 없겠지. 물론 더 나아질 수도 있지만.

영화 보고 노래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기, 듣기, 말하기 중에서는 말하기를 포기하는 게 제일 낫다고 스스로를 이상하게 위로했다. 생각보다 많은 게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말을 못 하더라도 나를 다르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큰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말 못 하더라도 뭔 상관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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