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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Jul 28. 2018

030. 남조선?

laibon의 David 사장님. 반가웠습니다.

  체스키크룸루프에서 채식 전문 레스토랑에 들렀다. 굴라쉬를 필두로 시작한 지속적인 고기 세례는 나와 누나의 위를 지치게 하기 충분했고, 강가 경치를 만끽하며 커피나 맥주를 여유롭게 즐기기도 좋아 보였다. 음식은 꽤 괜찮았다. 맥주는 역시나 체코스러웠다(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가격과 높은 품질을 지녔다). 파스타가 굉장히 가벼웠지만 맥주와는 색다르게 잘 어울렸다. 비단 치킨이나 피자처럼 무거운 음식만이 좋은 맥주 안주는 아니렸다.

  식사를 만족스럽게 마치고 영수증을 요구하니 사장님이 사람 좋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영수증을 주면서 혹시 한국인이냐고 묻더니 맞다고 하자 신나게 한국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몇 마디 인사는 별 감흥이 없었다. 불쾌한 한국말 호객행위 많이 당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한국의 지역, 서울, 제주, 대구, 울산, 부산에서 경기 수원까지 말하더니 자신이 이 지역을 총 2 주 조금 넘게 여행했다면서 부산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더 놀라운 말을 계속했다.

한국 사람들 한국 영어교육 다 싫어해.
좋아하는 사람 한 명도 못 봤어.

  여행 중에 만난 사람과 레스토랑 손님이 하나같이 한국 영어교육에 대해 불평한다고 말했다. 한국 교육이 창의성이 없다는 말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교육과 창의성을 동시에 말했기에 한국인이 말한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씁쓸했다. 얼마나 막막하면 먼 체코의 체스키크룸루프의 레스토랑 사장님께 한국 교육을 비판할까. 얼마나 진심이었길래 사장님은 온전히 그 감정을 받아들이셨을까. 나는 대충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다.

  대화는 꼬리의 꼬리를 물고 한국 정치, 최순실, 군대, 북한, 남북관계, 북미관계에 이어 한국-북한 호칭까지 이어졌다. 지금 보니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과 북한 호칭에서 사장님은 한계에 도달한 듯 느껴졌다. hanguk, bukhan, chosun, Korea, 그리고 Goryeo까지의 한국을 지칭하는 수 많은 호칭은 그의 머리를 터트리기 충분했다.

How do you call North Korea?
Buk-han
Ok, then how does North call South?
Nam-Chosun
What?

  북한이 조선이라고 한국을 칭하는 이유에 관한 질문도 이어졌다. 한국인도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문제다. 대충 답을 얼버무리며, 한국 사람들에게 남조선에서 왔냐 물어보면 웃거나 당황할거라고 말했다. 북한 사람들이 한국을 지칭하는 단어라고 하자 사장님은 굉장히 기뻐하면서 남조선과 북한의 체코어 발음을 메모했다. 뒤 쪽에 온 한국 사람들한테 시험해볼 거라 말하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다(물론 계산 하면서 다시 인사를 나눴다). 문득 이 짧지만 긴 대화가 모두 사장님의 기계적인 거짓 연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재미없어도 재미있는 척, 다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연극. 그래도 이 정도 정성과 준비의 거짓 연극이라면 난 호의로 연극을 진실로 여길 것이다. 거짓이라면 유능한 장사꾼이고, 진실이라면 좋은 성격의 사장님인데, 둘 다 나쁘지 않다. 사장님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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