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류에 성공한 건 네가 용기 있다는 증거는 되지만 네가 꼭 옳다는 말은 아니야."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모모가 말했다.
"틀려도 상관없어. 해볼 만한 모험이었으니까."
바이야가 대답했다.
- 「혹등고래 모모의 여행」 <류커샹, 더숲.2018>
내가 근무하고 있는 광고대행사는 광고와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한다.
제품의 판매촉진, 혹은 브랜드 이미지 형성을 위한 광고의 전략을 고민하고, 카피를 쓰고, 영상을 만들고, 마케팅 효과에 대한 조사를 하는 등 다양한 업무들이 매일 쉼 없이 돌아간다. 이렇게 광고대행사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종류의 일 중 (적어도 기획자인 나의 기준에서) 가장 보람차고 짜릿한 순간이라면 경쟁 PT에서 승리한 순간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광고하려는 제품 혹은 브랜드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다양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광고 전략을 세우고 밤새 광고 시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민한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간 각 분야 전문가들이 투닥거리며 경쟁 PT를 준비한다. 그리고 클라이언트 앞에서 몇 개의 광고대행사들이 각자의 전략과 아이디어를 프리젠테이션 한다. 그중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대행사의 광고 안을 클라이언트가 선정한다.
선정된 광고대행사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 그동안의 고생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치환되고 논쟁을 벌였던 팀원들 사이는 함께 전투를 치른 동료처럼 끈끈해진다. 함께 고생하여 고민한 아이디어로 클라이언트를 설득 해내고 대중에게 선보일 실제 광고로 제작된다는 사실에 더할 나위 없는 충만감이 차오른다. 광고 대행사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경쟁 PT 승리의 짜릿함을 동력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다.
승리자가 있으므로 당연히 패배자도 존재한다. 아무리 밤을 새우며 고생했더라도 모든 경쟁 PT에서 승리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패배의 타격은 승리했을 때의 기쁨만큼이나 크다.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는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왜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그때 그 의견이 반영되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미련에 모두가 뒤숭숭해진다.
특히, 이런 협업이 실패했을 때의 잔인한 점은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일수록 타격이 크다는 점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은 분명 진리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중간만 가서는 승리할 수 없는 게임일 때 누군가는 리스크를 안고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러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실패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던' 그 사람에게 암묵적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고 대안 없이 비판만 하던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그것 봐. 내가 뭐랬어'
뒤숭숭한 공기의 회사를 뒤로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도 패배의 아픔은 여전히 또렷한 형태를 띠고 있다. 아마 며칠 밤이 지나야만 아픔이 희미해질 것이다. 누군가는 상사의 위로 한마디에, 누군가는 동료와의 담배 한 대에 금세 아픔을 잊기도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종류의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다.
패배자의 밤에 어울리는 술은 독주이다. 모두 잠들어 있는 고요한 밤. 테넌츠 맥주를 꺼냈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 않는 위스키 배럴 에이지드 맥주이다. 한 모금 마시면 맥주의 청량함보다는 위스키의 묵직함이 느껴진다. 간단하게 견과류 정도를 곁들여 홀짝홀짝 밤을 보낸다. 위스키에 얼음이 녹듯 골치 아픈 생각들이 조금씩 희석되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아픔을 독주로 잠시 마비시키고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