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란 보이는 방식을 컨트롤 하는 것이다. 세상에 보여지는 모든 것을 기업에 이상적인 상태가 되도록 컨트롤한다. 이것이 바로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 「팔다에서 팔리다로」 <미즈노 마나부, 이콘.2018>
맥주에 엄청난 조예를 가진 사람인 것처럼 맥주 관련 글들을 끄적이고 있지만, 사실은 맥주에 관한 전문적 지식도 전무하고 같은 계열의 맥주라면 그 차이를 잘 알지는 못한다.
스타우트 계열 역시 마찬가지이다. 크롬바커 다크, 드래곤스 밀크, 테넌츠 등 여러 가지 스타우트 맥주를 마셔봤지만 로고를 가린 채 똑같은 잔에 담아서 준다면 그것이 어떤 맥주인지 시원하게 답을 내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스타우트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단박에 대답할 수 있다. 바로 기네스이다. 맛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여러 스타우트 중 유독 기네스를 마셨을 때 겪었던 재미있었던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런던의 펍에서 처음 보는 영국 청년이 사주었던 맥주도 기네스였고, 영화 킹스맨을 본 늦은 밤에 영화 속 콜린 퍼스가 마셨던 기네스를 찾아 동네의 여러 펍을 기웃거렸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 드래프트 비어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도 기네스를 통해서였다.
술과 관련된 재미있는 경험들은 대부분 이 분야의 선구자(?)인 아내의 손에 이끌려 처음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네스 폭탄주를 처음 마셔본 것 역시 아내 덕분이었다.
한창 맥주의 세계에 빠져 이런저런 신기한 맥주들을 찾아다니던 어느 날, 아내는 ‘기네스 폭탄주’를 알려주겠다며 의기양양하게 나를 이끌었다. '기네스 폭탄주라고?' 젠틀한 영국 신사 같은 기네스를 폭탄주로 만들어 먹는다는 사실이 어딘가 부조리하게 느껴졌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더 흥미를 끌었다.
함께 찾아간 칵테일 바의 메뉴판에는 '폭탄주'라는 생활 언어가 아닌 ‘아이리쉬 밤’이라는 일견 화장품의 한 종류와 같은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아이리쉬 밤을 주문하자 바텐더는 먼저 잔에 기네스를 3분의 2 정도 담아내고 위스키잔에 끈적한 베일리를 따른 후 기네스 위로 퐁당 떨어뜨렸다. 거울처럼 깨끗했던 검은빛의 기네스에 베일리가 물감을 탄 것처럼 꾸물거리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호쾌한 선장처럼 “아이리쉬 밤은 무조건 원샷이여!” 라고 외치곤 꿀꺽꿀꺽 아이리쉬밤을 한 번에 마셨다. 아일랜드 항구의 낡은 바에 삼삼오오 모인 어부들이 바다에서의 영웅담을 늘어놓으며 폭탄주를 마시는 장면과도 같은 패기였다. 아내를 따라 아이리쉬밤을 조심스럽게 마셔보았다. 부드러운 기네스의 맛이 먼저 느껴지다가 이내 더 진한 농도의 베일리가 뒤따라왔다. 일반적인 위스키 폭탄주처럼 독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기분 탓인지 몸속이 뜨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네스 잔 위로 위스키 잔을 떨어뜨리곤 단번에 마시는 이 마초적 리츄얼은 맛을 떠나 다른 맥주에서는 없었던 신나는 경험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되었다.
제품의 품질 차이를 지각하기 어려울 땐 경험의 차이가 재선택을 결정하곤 한다.
추억 속 두꺼비 로고가 시간이 흘러 비슷한 소주들 사이 선택 이유가 되고, 소금과 레몬이라는 괴이한 안주 조합이 데낄라의 선택 이유가 되고, 아이리쉬 밤의 마초적 리츄얼이 스타우드 중 유독 기네스에 호감을 품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경험이 시간의 집적에 따라 자연스럽게 탄생하기도 하지만 마케팅이라는 이름 하에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경험의 설계가 매력적이라면 누군가에게 선택 이유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상술'이라는 이름이 붙을 것이다.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기네스의 경험처럼 내가 담당하는 브랜드를 통해 어떤 재미있는 경험을 사람들에게 선사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꽤나 직업병적인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