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는 사람들과 브루독에 대하여

by 이백구십칠

변화를 강요당하기 전에 스스로 변화하라.


- <Jack Welch>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니 어느새 옷차림을 재정비해야 하는 계절에 당도해있다.

이번 주말에는 바로 옷장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가을 옷을 꺼내 입어두지 않으면 금방 겨울 날씨가 되어 까만 롱패딩만 입게 될 것이라는 학습효과이다.


주변 환경 변화에 무감각한 냄비 속 개구리 같은 사람이지만 최근엔 종종 '이러다 정말 지구가 망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뉴스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먼 나라의 환경 이슈는 차치하고 이제는 매일 맞이하는 일상적 환경에서도 변화가 느껴진다.

'대한민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배워왔지만 언제부터인가 봄과 가을은 순식간이다. 과거 태국 여행에서나 겪어 보았던 스콜과 같은 갑작스러운 호우를 이번 여름엔 서울에서도 종종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간 존재하지 않았던 역병이 일상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왔던 세상과 무언가 달라지고 있음을 외면하려 해도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무감각하게 행해왔던 나의 행동들을 돌아보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 재조정을 시도하게 된다. 긴 재택 노동을 시작하기 전 커피를 사러 동네 카페에 나갈 때면 다스베이더 모양의 애착 텀블러를 들고나간다. 장을 보러 갈 때는 필수 옵션처럼 낡은 에코백을 챙긴다. 가끔은 용기를 내어 집에서 쓰는 락앤락을 들고 집 근처 식당에 가기도 한다. 그리고 쭈뼛쭈뼛 부탁을 한다.

"저기.. 죄송하지만 여기에 담아주실 수 있나요?"


'이제 와서 챙기는 척하기는..' 하는 힐난과 '그런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어'하는 조롱이 지구의 중심부로부터 울려 퍼지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경험했다. 가끔은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있고, 제로 웨이스트를 표방하는 샵이나 일회용 용기가 없는 동네 커피숍들도 쉽게 보이고 있다. 꿈틀거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꿈틀거리고 있는 맥주도 있다.

스코틀랜드의 맥주 브랜드 브루독의 이야기이다. 지루한 영국 대중 맥주시장에 반기를 들며 출발한 브랜드답게 기행에 가까운 각종 마케팅으로도 유명한데 최근엔 탄소 네거티브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브루독은 지난해 8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 2000acres 규모의 땅을 샀다. 그리고 이곳에 2022년까지 1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풍력 발전을 통해 맥주를 만들고 제품 포장재를 플라스틱 대신 종이로 대체했으며 전기 트럭을 사용해 맥주를 유통하고 있다. 브루독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든 모르고 있든 지구를 위한 거대한 행동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광고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보여 주며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브루독은 맥주를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맥주는 힙스터를 위한 것도,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부자를 위한 것도, 남자를 위한 것도, 여자를 위한 것도, 그들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채식주의자, 육식주의자, 채식주의자라고 거짓말하는 사람들, 키가 큰 사람, 키가 작은 사람,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 신을 믿는 사람, 무신론자, 행복한 커플, 불행한 커플, 가게를 지키는 사람, 강도, 수영을 못 하는 사람, 호기심이 많은 사람, 친근한 사람, 명상하는 척하는 사람..

그렇습니다.

브루독은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맥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계 최초의 탄소 네거티브 맥주 양조장이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맥주를 마실 때마다 우리는 나무를 심습니다. 브루독을 마시는 모든 사람들은 물론, 브루독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까지. 모든 이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듭니다.

그게 바로 브루독이 지구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인 이유입니다"


지구를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움직임인지, 요즘 사람들의 결핍을 빠르게 읽은 영리한 움직임인지 알 수 없지만 이왕이면 행동하고 있는 브랜드의 맥주캔을 집어 들고 싶어진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작은 습관이 바뀌면, 영리한 마케터들이 기민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시장이 바뀌기 시작하면 비로소 주류가 바뀌게 된다.

그렇게 마케팅은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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