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란 모든 것이 달라진 후에야 비로소 싹트는 것
- 「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민음사.2008>
'타닥. 타다닥.'
모두가 분주한 사무실. 일을 하면서도 시선은 자꾸 시계로 향한다.
'3분전...지금 회의하자고 부르면 안 되는데...'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려 커피를 연거푸 들이킨다.
전주영화제의 온라인 예매가 시작되기 직전이다. 예매 사이트가 오픈되자마자 기대작들은 순식간에 매진될 것이다. 보고 싶은 영화들의 예매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는 빠른 클릭 속도와 전략적인 예매 순서 설정, 매진에도 당황하지 않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시간이 되었다. 드디어 예매 전쟁이 시작된다.
'첫번째로 보고 싶었던 음악영화 오케이. 다음으로 보고 싶었던 코미디영화...매진이군. 그럼 대안으로 생각했었던 영화를...'
매년 치루고 있는 전주영화제 예매 전쟁, 그럭저럭 성공적이다. 예매에 성공한 영화 리스트를 캡쳐하여 의기양양하게 아내에게 보낸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쉽게도 올해는 찾아가지 못했지만) 꽤 오래전부터 매년 5월이 되면 전주영화제를 찾아가고 있다. 대학생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아내의 주도로 찾기 시작한 전주영화제는 언제나 즐거운 기억만이 가득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기차를 타고 전주역으로 향한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전주 시내를 산책하다가 비빔밥이나 콩나물 해장국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이후에는 미리 예매해 둔 영화들을 내리 감상한다. 대학생 시절, 전공 수업과 교양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과 또 다른 강의실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여기저기 영화관을 옮겨가며 하루에 3~4편의 영화를 열심히 감상한다.
그날의 영화를 모두 본 후에는 전주의 명물인 가맥집으로 향한다. 가맥집은 슈퍼마켓 형태의 맥주집으로 일반 병맥주와 과자, 그리고 간단한 안주류를 파는 곳이다. 가맥집은 특히, 주인 할머니께서 구워주시는 먹태가 하이라이트이다. 연탄불에 구워주는 먹태를 잘게 찢고 마요네즈 소스나 고추 간장 소스에 푹 찍어 먹으면 절로 맥주를 부르는 마법이 완성된다. 가게 벽면에 각 맥주 브랜드의 인쇄광고들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차가운 맥주를 꼴꼴꼴 따라 먹태와 함께 마신다. 그렇게 가맥집에서 먹태에 맥주를 마시며 평론가에 빙의되어 그날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주 단순하지만 평화로운 여행이다.
물론 전주에서의 시간을 느리게 재생하여 꼼꼼하게 비평한다면 늘 좋은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기대보다 별로여서 실망했던 영화도 종종 있었고 한옥마을의 수많은 관광객 속에서 진이 빠져 버렸던 기억도 있다. 내가 예매한 영화가 더 좋았네, 아니네 투닥거리며 다투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특정 여행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하면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차곡차곡 정리라도 한 것처럼 좋았던 기억은 잘 보이는 상단에, 힘들었던 기억은 잘 보이지 않는 하단에 슬그머니 정렬된다. '전주'라는 단어를 머릿속 검색창에 입력해도 늘 평화롭고 잉여로운 시간만이 출력된다.
이런 효율적인 추억 정리 체계가 있기에, 그리고 가맥집의 먹태와 맥주가 기다리고 있기에 내년에는 다시 5월의 전주를 방문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