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축구를 보고 하이네켄을 마시는 이유는

by 이백구십칠


가장 기다리던 순간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 <하이네켄 광고 카피>




바야흐로 스페인 라리가가 세계 축구를 호령하던 시절. 아내는 티키타카의 바르셀로나에, 나는 갈락티코의 레알 마드리드에 심취해 있었다.

소문난 앙숙인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더비 경기가 열리는 밤이면 각자가 응원하는 선수의 저지를 걸쳐 입고 경기를 중계해 주는 펍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한 쪽 팀의 승리로 경기가 마무리되면 깔깔깔 한껏 상대방을 비웃으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세월이 흘러 EPL에 더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이후에도 비슷한 패턴이었다. 공교롭게도 아내는 맨시티, 나는 맨유를 응원하게 되었던 것. 일부러 상대방의 라이벌 구단을 선택하기로 정한 것처럼 또다시 EPL의 두 앙숙을 응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페인 리그에 비해 EPL 중계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너무 늦지 않은 새벽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함께 경기를 시청하였다. 어느 날은 내가 아내를, 또 다른 날은 아내가 나를 놀려대었지만 아내가 나를 놀리는 날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푸하하하. 또 이겨 버렸네. 이걸 어째”

(맨유야 힘 좀 내..)


함께 축구를 보는 날의 맥주는 높은 확률로 하이네켄이다.

편의점 맥주 4캔 만 원이라는 새 시대가 열린 이후 매번 새로운 맥주를 고르는 재미에 빠졌지만 축구 경기를 앞두고 맥주를 고를 때면 하이네켄으로 손이 가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는 아마도 하이네켄은 오래전부터 챔피언스리그를 후원했을 뿐 아니라 축구와 관련된 재기 발랄한 이벤트를 펼쳐 ‘챔피언스리그=축구=하이네켄’이라는 공식을 전파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이네켄이 진행한 이벤트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2009년 AC밀란 대 레알마드리드 경기를 앞두고 진행한 몰래카메라 이벤트일 것이다.

이벤트의 내용은 이렇다.

AC밀란 대 레알마드리드 경기가 열리는 당일, 하이네켄은 가짜 클래식 공연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그 공연에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이 참석할 수밖에 없도록 함정을 팠다. 축구팬의 여자친구를 몰래 섭외하여 꼭 클래식 공연에 같이 가자고 설득하거나, 교수를 섭외해 학생들에게 클래식 공연에 꼭 참석해서 공연을 보고 그 공연을 토대로 리포트를 써오라고 숙제를 내주는 식이다. 그리고 클래식 공연 당일, 지루한 클래식 공연이 이어지던 중 하이네켄은 이 공연이 가짜 공연임을 밝히고 챔피언스리그 오프닝 곡을 연주하며 경기 화면을 틀어준다.

'이렇게 중요한 경기를 안 보려고 하신거에요?’라는 문구와 함께.

클래식 공연을 보던 지루한 표정이 보고 싶었던 축구 경기를 틀어주었을 때 환한 모습으로 급격하게 바뀌는 장면이 압권이다.

이 이벤트는 축구팬들의 마음과 하이네켄이라는 브랜드를 절묘하게 연결하였다는 극찬을 받으며 660만 명이 생중계로 시청하고 1000만 명 이상이 뉴스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대학생일 무렵 보았던 이 영상으로 축구 뿐만 아니라 하이네켄이라는 브랜드의 팬이 되었다.


축구와 맥주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준다는 점이다.

물론 미지근하게 마시는 중국식 맥주와 어딘가에는 일부러 따뜻하게 마시는 맥주가 있다고는 하지만 맥주는 기본적으로 답답했던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인 것이다. 축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구기종목에 비해 긴 시간 동안 점수가 잘 나지 않는 스포츠. 답답한 경기가 전개되던 중 예기치 못하게 수비진을 뚫고 시원하게 골문을 가르는 장면을 보면 답답했던 이전의 시간들이 모두 만회되는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인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와 맥주는 사랑받는다. 마음대로 절대 풀리지 않는 우리의 하루도 축구와 맥주 같은 존재들이 있기에 힘들어도 한 발짝씩 나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축구와 하이네켄 한 잔으로 답답했던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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