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때문에 다들 난리다.
금융회사 모건 스탠리도, 마블의 아버지 스탠리 옹도 아닌 스탠리 텀블러에 대한 이야기이다. 텀블러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그게 뭐가 다르다고 다들 난리인지 P는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늘 스타벅스 텀블러를 들고 다니던 L 차장은 어느 날 한 손으로 들기도 버거워 보이는 커다란 스탠리 텀블러로 갈아탔다. 또 하루는 H가 회의실에 핑크색 스탠리 텀블러를 들고 나타나니 "어머 어머. 이거 어디서 구했어?" 하고 모두들 호들갑을 떤다.
사실 P는 스탠리 열풍이 좀 고깝게 느껴졌다. 보온뿐만 아니라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쓰는 것이 텀블러라는 존재인데 그런 텀블러가 패션 아이템처럼 생산되고 소비되는 아이러니가 표면적 이유. 진짜 이유는 스탠리가 인기를 끌게 된 결정적 사건 때문이었다. 스탠리의 인기에 불을 붙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미국에서의 자동차 화재 사고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자동차 화재로 해당 차량은 새까맣게 전소되었는데 기어 박스 옆자리 컵 홀더에 놓여있던 스탠리 텀블러만 멀쩡했던 것이다. 심지어 텀블러 안의 음료수와 얼음까지 멀쩡한 채로. 이 영상이 SNS를 타고 널리 퍼지며 스탠리 텀블러에 대한 관심이 신드롬처럼 퍼져나갔다. 그 사건을 계기로 스탠리는 도난 사건이 일어날 정도로 핫한 브랜드가 되었고 이런 성공 스토리 때문에 P는 스탠리를 '사실 뛰어난 건 없지만 운이 좋아 성공한 행운아'로 취급했다.
하지만 P는 얼마 후 삐뚤어진 자신의 시선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스탠리라는 브랜드에 관한 아티클을 접하고 '운 좋은 행운아' 취급은 취소하기로 했다. 스탠리 텀블러가 탄생한 것은 로고에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것처럼 1913년도였고 이미 오랜 세월 동안 꽤 많은 사랑을 받아온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물리학자였던 윌리엄 스탠리 주니어는 '하루 종일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금속으로 된 진공 보온병을 제작했다고 한다. 이후 세계 2차대전에서 미군에 보급되기도 했고 야외에서 근무하는 건설노동자들이나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그렇다. 스탠리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미 제품력을 갖추고 핵심 타겟들에게 인정을 받은 이후, 마침 자동차 전소 사건이 일어났고 그 행운을 잡아 절묘하게 제품력을 홍보했던 것이다. 스탠디는 자동차 전소 사건이라는 행운을 활용해 타겟을 MZ세대로 확장해버렸다. 애초에 탄탄한 제품력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온 역사가 없었다면 지금의 신드롬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떤 대상을 고깝게 본다는 것은 어쩌면 그 대상이 자신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P가 스탠리를 '운 좋은 행운아'라고 속단하고 고까워했던 것은 P가 스탠리의 자동차 화재사고 같은 '행운'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그건 또 요즘 일이 잘 안 풀린다는 반증일 것이고.
'행운은 준비된 사람을 선호한다'
P는 오래된 격언을 되뇌었다. 행운이라는 기회를 기다려 반등을 노리기보다 차근차근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행운이 찾아왔을 때 제대로 낚아챌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작전지시를 내렸다. 스탠리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