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어느 봄날에...

2012년 4월 24일 어느 날

by odbel

와이프가 약속이 있어 집을 비웠다. 점심을 혼자 차려 먹는다. 냉장고에서 계란이라도 꺼내서 요리를 할까 하여 물로 씻어 놓고 나서는 그냥 놔눠 버렸다. 기름 묻힌 설거지 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침에 먹었던 국을 발견하고 있던 밥에 국물을 한껏 부어서 반찬 몇 개를 꺼내서 제 딴에는 그럴듯하게 상을 차려 먹는다.


혼자 적적하게 먹는 게 아쉬워서, 라디오를 듣는데, 문학 작품을 읽어 주는 방송인 것 같았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작품을 읽어 주고 있었다. 별로 뛰어날 것은 없는 한 기자가 자신의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광주에 내려가 취재를 하게 되는 내용인 거 같은데, 소설 속의 분위기도 낯익다. 문득 듣고 있노라니, 나도 뭔가 끄적이고 싶었다.


이제 막 식사를 마친 식탁 너머로 보이는 베란다 창문, 그 내리쬐는 햇볕 아래 가지런히 놓은 화분 몇 개. 난 화분 키우는 재주는 없어서 거의 다 죽이게 마련인데, 아들 녀석 때문에 학교에 가져갔다가 학년을 마치고 다시 가져온 화분은 오래도 간다.

휑한 베란다 공간에 그나마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 있는 게 다행이다. 보이는 모습이 마치 차를 타고 터널을 통과해 나올 때 시야에 들어오는 것 같다. 들어오는 햇빛과 거실의 어두운 공간이 조화를 이루어 무슨 굴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문득 올봄에는 꼭 저 더러워진 창문을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 비가 제법 온다니, 그때 무거운 몸 좀 움직여 창문 좀 닦아 봐야겠다.


잠시 할 일은 접어 두고, 그냥 가만히 조용히 있어 본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침묵과 고요함인가. 마치 깊은 물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귀를 꽉 메우는 듯한 적막함. 나의 일상의 삶이 얼마나 번잡하고 시끄러운 것으로 가득 찼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조용히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꾸준하기만 하면 이리 살아도 나름 괜찮은 삶이리라 생각한다.


오늘은 대지에 생명력을 더하게 하는 따뜻한 햇볕이 충만하다. 그냥 감사할 일이다. 따뜻해서,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것이 있어서, 물을 마음껏 마실수 있어서, 가족이 있어서, 아내가 있어서, 내가 살아 있어서, 나를 챙겨주는 후배가 있어서, 나를 잘 몰라도 가끔씩 일거리를 주는 사람이 있어서, 등 대고 누울 곳이 있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서, 또한 살아 있어서, 나를 자기 아들보다 사랑한 분이 있어서, 내가 죽어도 갈 곳이 있어서... 모든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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