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용서해야 할까.

by 마운트플라워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버지가 가진 건 딱 두 가지였다. 좋은 대학과 대기업. 그에게는 이 두 가지가 인생에서 올림픽 메달과도 같은 의미였다. 원래 덜 가질수록, 게으를수록 가진 것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안주하고 싶은 감정을 숨기기 위한 구실을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것들 중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시절, 큰 노력 없이 대학 졸업장만으로도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인생에서 노력해야 할 이유를 깨닫지 못하셨던 것 같다. 올림픽 메달을 따고 기량이 급격히 저하하는 운동선수처럼 그는 일찌감치 인생의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영혼의 단짝, 술과 함께. 그리고 우리 가정도 파괴되기 시작했다.


불안했던 우리 가정의 중심에는 항상 '술'이 있었다.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을 드셨다. 어린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고 '회사에 다니면 무조건 술을 마셔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에게 아버지의 음주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당연한 일에서 비롯된 당연할 수 없는 일들은 혹독한 재앙이자 우리 가정을 파괴한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귀가한 모든 날이 살얼음판 위에서 벌어지는 전쟁 같았다. 어린 나는 두려움이 너무 커서 그와 맞설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눈을 감고 제발 잠에 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 기도가 먹혔던 적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시간은 해결해주었다. 다음 날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불안했던 나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사랑의 단어를 내뱉으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를 두려워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모든 일이 마무리된 데서 오는 평온함, 더불어 감사함까지 느꼈다. 그 당시 아버지의 행위와 내가 느낀 감정을 아마 '그루밍' 비슷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부자는 더 멀어지고

성인이 된 후 나는 아버지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나를 위해서였다. 때마침 대학 때문에 반 강제로 시작하게 된 타지 생활은 아버지를 멀리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렇게 내 인생을 새롭게 찾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기 마련이다. 아버지의 어두운 늪을 벗어나 성장하고 있을 때 어머니와 동생은 오히려 그 늪에 더 깊이 빠지고 있었다. 아버지를 외면하려다 어머니와 동생도 함께 외면해버린 것이다. 동생은 온몸으로 아버지의 술주정을 받아내다 결국 스스로 정신 상담까지 받았다. 그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어머니는 그런 딸의 아픔을 알아채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셨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그냥 막연히 괜찮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한심했다. 아들과 오빠로서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변했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대기업

어머니는 그 사실을 일부러 숨기셨다. 혹여나 나의 대학생활에 문제가 생겨 취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그 빌어먹을 대기업 취업 때문에. 때마침 학업을 마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나는 아버지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당하기만 하던 꼬마가 아니었다. 더 이상 어머니와 동생을 힘들게 하는 건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나의 저항에 당황한 만큼 더 격렬히 저항하셨다. 어느 날 나가 살던 아들이 갑자기 돌아와서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니 자존심도 적잖이 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자존심 싸움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저항이었다. 그래도 아들로서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취한 사람의 입에서 무자비하게 터져 나오는 비난과 비하, 조롱과 욕설이 담긴 문장들은 인간으로서 참아내기 힘들었다. 그렇게 이십 년을 넘게 참은 분노가 담긴 몇 번의 작은 전쟁이 지나갔다.


변하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지만

그렇게 해서 지금은 나아졌을까. 사실 크게 변한 건 없다. 정확히 말하면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졌지만 가족이 받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드시고 우리 부자는 서로를 피하기 위해 눈치 싸움을 한다.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면 '아버지도 이제는 반성이라는 걸 조금은 하시는 건가?'라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는 변하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지만 그렇다고 전부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아버지와 나는 각자가 받은 상처에 대한 화풀이 대상으로 서로를 선택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어느 쪽에게도 득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용서가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도 잘 알지만

용서라는 방법도 생각해봤다. 하루에도 몇십 번씩 마음이 바뀐다. 코가 비뚤어지게 술에 취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전보다 많이 늙은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 아버지와 나는 그런 갈등에 대해 서로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속마음을 공유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서로 헐뜯고 미워하고 소리칠 줄만 알았지 화해할 줄은 몰랐다. 나는 아버지의 술주정 때문에, 아버지는 나의 저항 때문에 서로가 받은 상처가 더 많다고 우기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서로를 미워하는 것이 본인이 받은 상처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런 응어리를 풀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진심을 나누는 용서라는 것도 잘 알지만, 그래도 용서는 힘들다. 아마 둘 중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는 가능할까. 마지막 기회마저 사라지는 최후의 날에 맞이할, 끝없는 후회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용서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현명하지 못한 인간이라서, 용서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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