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감추고 싶었던 그 씁쓸한 실패의 기억
나는 실패한 삼수생이었다.
이 뼈아픈 실패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나 스스로 패배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만들었다. 어떠한 행위도, 위로도, 자기 합리화도 이 쓰라린 기억을 지워주지는 못했다. 인생의 전부였던 좋은 대학 간판을 이번 생에는 절대 가지지 못할 거라는 사실에 나는 절망했다. 노후대비는 일찌감치 포기한 채 버는 족족 나의 교육비를 대셨던 부모님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나의 스무 살을 생각하면 울컥했다. 그리고 억울했다. 열심히 했는데 왜 나만 이루지 못하는 걸까. 내가 운이 없는 걸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는 계속 실패하는 걸까.
부족하게 자라지는 않았다. 명문대 출신에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아버지와 생활력 강한 어머니 덕분이었다. 그래서 두 분은 좋은 대학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대학 졸업장 하나만으로도 가고 싶은 기업을 골라서 갔던 시절에 사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리고 나의 인생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다음과 같은 공식은 학창 시절 내내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아니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몇 년 동안은.
[좋은 대학 + 대기업 입사 = 성공한 인생]
부모님께 노후 대비란 그저 남 얘기일 뿐이었다. 맞벌이 수입의 대부분은 아들 교육으로 투자(?)하셨다. 내 입장에서는 그 부분이 항상 부담이었다. 전과목 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나는 계속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마음을 잡지 못했고 계속 밖으로 돌았다. 그런데도 완전히 공부에 소질이 없던 건 아니었는지 벼락치기를 해도 어느 정도 성적이 나왔다. 덕분에 부모님은 아들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셨다. 하지만 수능은 벼락치기가 통하는 시험이 아니었다. 나는 첫 수능을 그렇게 말아먹었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으니 재수는 당연한 처사였다. 업계에서 꽤 알아주는 재수학원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시간표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 아침 7시 쯤 학원에 도착해서 밤 10시가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다. 그 생활을 1년 동안 반복했다. 그리고 결과는 첫 수능보다 낮은 점수였다. 그렇게 나는 재수도 말아먹었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으니 삼수도 당연했다. 마지막으로 기숙학원에서 세 번째 입시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경기도 어느 산속에 위치한 기숙학원에 들어갔고, 일주일 만에 담당 선생님께 울며 불며 집에 가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 불현듯 밀려오는 패배감과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부모님께 보일 수는 없었다. 나는 대학에 가지 못한 패배자이자 죄인이었고 고통조차 입밖에 낼, 그럴 권한 자체가 없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학원 생활 중 서울에 한 대학에서 추가합격 소식이 들려왔지만 거절했다. SKY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미련한 생각 덕분에. 그 이후로 나는 한 달에 한 번 주어지는 3박 4일 외박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학원에서 보냈다. 초반에는 그렇게 하루 종일 공부하니까 뭐라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성적은 정체기가 왔고 나는 초조해졌다. 입시에 쏟아부은 돈, 시간, 노력 등을 생각하면 명치쪽이 꽉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나는 그 부담감을 견디지 못했고 그렇게 세 번째 수능도 실패했다. 죄인이라는 낙인을 지우지 못했다. 같은 자리에 세 번이나 박힌 낙인은 절대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내 나이 스물 하나. 앞으로 실패자로서 살아갈 인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쓰라렸다.
그렇게 첫 수능을 보고 10년 정도가 흐른 지금, 이제야 삼수 생활이 실패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좋은 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좋은 대학에 가야 대기업에 갈 수 있고 그러면 인생이 편해진다고 가르쳐 주셨다. 그 예시는 아버지였다. 대학 졸업장 덕분에 현 시국보다는 편하게 대기업에 입사해서 지독했던 단칸방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믿음은 자연스럽게 장남이자 유일한 아들인 내게 투영되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그 해묵은 믿음 하나만으로 원치 않은 일을 참고 해낼 만큼 의지가 강한 아들이 아니었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너는 무슨 일을 하고 싶니?"라고 물어봐줬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어느 대학에 가고 싶니?"가 아니라 진짜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면? 부모님, 학교 담임 선생님, 학원 선생님 심지어 친척들까지도 내게는 "뭘 하고 싶니?"가 아니라 "어느 대학에 가고 싶니?"라고 물었다. 모두가 나의 미래를 지켜봤다. 그런 환경에서 나는 내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가 없었다. 인생의 성공 여부는 '좋은 대학에 가냐 못 가냐'로 나뉜다고 배우며 자랐으니까.
사실 이 질문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실패한 자의 변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좋은 대학만을 목표로 공부해서 그 목표를 이루는 친구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 뭐,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나는 그렇게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친구들도 자신이 왜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대학이 우선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방법 중에 하나가 좋은 대학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우리 아버지 세대가 살았던 시대처럼 대학이 밥 먹여 주던 시절은 지난 지 오래다. 나에게 집중하고 내 안에서 인생의 목표를 결정해야 한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야!"라는 오글거렸던 문장이 서른을 코 앞에 둔 지금에서야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