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위치가 어디에 있든 변화는 나 스스로 만드는 것.
나에게 지방대는 실패자라는 낙인에 불과했다.
좋은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좋은 기업에 취업할 수 없고 그런 인생은 실패한 인생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시에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세 번 다 실패했다. 그나마 지방대 중에서는 그나마 알아준다는 국립대 공대에 갔지만 평생 SKY를 '바라보기만'했던 자에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학교 이름도 처음 들어본 곳이었고 그쪽 지역은 방문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의 나는 부모님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 불효 막심한 놈이자 일찌감치 인생에서 실패한 패배자였다.
입학식 하루 전날 기숙사에서 지낸 밤이 기억난다.
당당하게 내려온 것도 아니었으니 자괴감이 상당했다. 유배당한 느낌과 조금은 비슷할까. 삼수를 위해 기숙학원에 들어간 첫날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그래도 이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두 살 어린 동기들에게 부족해 보이는 건 더더욱 싫었다. 일부러 더 밝은 척, 쿨한 척 가면을 쓰고 다녔다. 그런데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었다. 가면은 피부로 스며들어 내 얼굴이 되었고 나는 현지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후 왠지 모를 해방감이 들기 시작했다.
오로지 좋은 대학과 대기업 취업밖에 모르던 집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취업이 잘 된다는 공대에 입학했지만 광고 동아리에 가입했고 학과 생활보다 더 열심히 활동했다. 그때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를 감싸고 있던 두꺼운 껍질을 조금씩 벗겨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후 힘들었던 전공 공부는 딱 평균만 하자는 생각으로 버텼고 이것저것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드라마를 좋아해서 PD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당시에 공대생은 받지 않았던 언론정보학과의 방송 제작 강의를 듣기 위해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 사정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직접 움직여서 절박함을 표현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렇게 홀로 아등바등 타 학과 강의도 듣고, 유튜브로 영상 편집과 촬영을 독학하는 등의 '주체적인 노력'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 그때 느꼈다. 내 안에서 찾은 목표는 나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그래도 계속 나아가는 건 역시 어렵지만.
현실에 막혀 어느 순간부터 접어두었던 PD라는 꿈이 지금은 죽기 전에 세상을 울릴 작품 하나 만들겠다는 목표로 바뀌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때 처음 꿈을 가진 이후로 계속 달려오고 있다. 이런 나를 응원하는 사람은 얼마 없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늘 남들이 정한 목표에 끌려다녔던 내가 지금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고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변화했고 그런 나 자신이 기특하다. 이런 게 인생의 행복 아니겠나.
내가 과연 지방대에 오지 않았다면
운이 좋아서 수능 대박을 맞고 서울대에 갔으면 나는 그 생활에 만족할 수 있었을까? 물론 사람 일은 단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지방대에 입학해서 집을 떠나 타지 생활을 시작한 것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확실하다. 내 인생을 망하게 할 줄 알았던 지방대는 오히려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나를 감싸고 있던 두꺼운 알을 깰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인생에서 대단한 성공만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실패가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지방대 입학은 내게 신의 한 수였다. 전화위복(轉禍爲福),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도 불리는 이 진리는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