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운트플라워 Sep 08. 2022

동료가 모두 퇴사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

일에 대한 나의 가치관

현 직장에 입사를 한 후 6개월도 안 돼서 파트원 4명 중 2명이 퇴사를 했다. 파트장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했다. 직장에 오래 다닐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 혼자 파트에 남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지역 방송사 특성상 인력이 적고 매우 경직된 조직 문화 때문에 퇴사율이 많다는 것을 어느 정도 감안한다 해도 꽤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 당시 우리 파트가 맡고 있던 정규 프로그램과 단발성으로 들어오는 행사 등을 쳐낼 수 있는(이 상황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가 이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인원이 팀장님과 나, 정확히 말하면 PD로서 제작이 가능한 인원은 우리 사옥에서 나뿐인 셈이었다. 그래도 웃긴 게 어찌어찌해도 회사는 돌아갔다. 그 당시 나는 어느 직원보다도 먼저 출근했고, 가장 늦게 아니 한참 늦게 퇴근했다. 그 생활을 6개월 정도 했음에도 후임자는 들어오지 않았다. 입사 지원율조차 높지도 않았을뿐더러 면접까지 간 지원자를 윗선에서 채용 거부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왜 포기하지 않았을까?


첫 번째는 책임감이었다. 방송계에서 흔히 말하는 입봉의 기회를 현 직장에서 얻었고(물론 퇴사자 덕에 강제로 한 입봉이었지만), 처음으로 프로그램의 총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메인 PD가 됐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꽤 괜찮은 감투를 쓴 기분이기도 했다. 그동안 조연출로 제작에 참여했던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책임감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었다. 경력이 얼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작가, 카메라 감독, CG, 심의팀까지 모든 스태프들은 나에게 결정을 요구했고 그때마다 선택의 기로에서 헛발질과 뒹굼을 반복하며 꾸역꾸역 나아갔다. 신선하지만 극한의 자극들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를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밀어줬던 거 같다. 그렇게 반년 넘게 조연출도 없이 매주 50분 분량의 프로그램을 섭외부터 마무리 편집까지 쳐내 왔다. 물론 그 와중에 쉴 틈 없이 던져지는 여러 가지 업무도 함께 말이다.


두 번째는 성장이었다. 배의 선장이 된 것처럼 프로그램의 이른바 대빵(?)이 되어 배가 침몰하지 않기 위해 매일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많이 성장했다. 물론 요즘도 부족하다는 마음과 성장에 대한 갈망이 멈추지 않지만, 인사이트가 거의 무(無)의 상태로 나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던 내가 이제는 뼈대 정도는 잡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제작자는 늘 배우고 고민해야 한다는 치기 어린 나만의 신념이 있었기에 '성장'이라는 단어는 내가 회사를 포기하지 않은 가장 주된 이유이기도 했다.


동료가 전부 퇴사하고도 내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책임감과 성장이었다. 내가 선택한 진로를 걸어가며 그 과정 속에서 마주한 책임감과 성장한 나의 모습은,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를 뚜벅뚜벅 걸어가게 만드는, 목표를 향해 조금은 늘어져도 포기하지는 않게 만드는 그런 든든하고 단단하며 건강한 동기부여이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입덧으로 고통받는 아내에 관한 복잡한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