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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산 Sep 18. 2022

새 차 산지 한 달만에 아우디를 박아버렸다.

돈도 마음도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몇 개월 전 인생 처음 새 차를 사고 한 달만에 아우디를 박았다. 그것도 가만히 주차되어 있던 아우디를 말이다. 서른 하나 인생 첫 사고였다. 젊은 나이지만 운전에 대한 자부심이 꽤 컸던 나였다. 운전 자체를 워낙 좋아했고 군대도 운전병으로 다녀왔기에(특히 운전병들은 운전에 대한 자부심이 보통 크다) 운전에 있어서는 그래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고 늘 생각해왔다. 가끔 보면 난폭운전을 운전 실력의 척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운전을 잘한다는 의미는 옆에 태운 사람을 얼마나 편안하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꽤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어느 화창한 날, 처갓집 식구들을 새 차에 태우고 근교 드라이브를 나갔다. 아흔이 넘으신 아내의 친할아버지도 모시고 갔는데 어렵게 사셨던 탓에 면허도 없으셨던 할아버지가 손주 사위의 새 차를 타고 굉장히 만족하시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기도 하고 괜히 뭉클하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근교의 대형 카페를 찾아갔다. 그리고 문제는 거기서 터졌다. 기분 좋게 차 한잔씩 하고 입구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차를 가지러 주차장으로 나섰다. 인기 있는 카페여서 그런지 넓은 노지 주차장에도 차는 가득했다. 시동을 걸고 왼쪽에 주차되어 있던 차를 피해 크게 돌아가려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어 액셀을 밟고 나아간 순간,


'빠드드득'


놀란 나는 곧바로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세운 후 육성으로 "뭐야"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그리고 차를 다시 살살 뒤로 뺀 후(뺐으면 안 됐지만) 차에서 내려 소리가 난 쪽을 확인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곳에는 검은색 아우디 차량이 아주 가지런히 주차선 안에 주차되어있었고, 범퍼를 보니 긁힌 자국들이 보였다. 내 차는 SUV였는데 상대적으로 높은 시트포지션 때문에 오른쪽에 주차된 차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 차를 확인해봤는데 멀쩡해보였다. 그 순간 내 머릿 속에서는 천사와 악마가 치고 박고 싸우기 시작했다.


'내 차는 멀쩡하니까 저 아우디의 범퍼는 원래 있었던 흠집이겠지?'


실제로 연식이 어느 정도 된 차였기에 그렇게 합리화를 하던 나는 패닉이 된 상황에서 일단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가족들에게 차를 박은 것 같은데 내 차는 멀쩡해서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표정은 넋이 나가 있었나 보다. 장모님은 내 얼굴을 보고 심각함을 감지하시고는 내 차를 살펴보셨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차 문과 발판(사이드 스텝)에 검은색 얼룩과 약간의 찌그러짐이 있는 것을 확인하셨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든 나는 그 부분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 차 아우디인데.."


우리는 다같이 그 사건(?) 장소로 가서 아우디 차량의 범퍼를 다시 확인한 후 차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를 빼다가 당신 차의 범퍼를 긁은 거 같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아주머니의 반응이 참 의외였다. 본인도 주차를 하다가 왠지 박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자리에 차를 주차할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며 본인도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보통은 역정을 내거나 한숨을 쉬며 부정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본인이 그 자리에 차를 주차한 것이 잘못이라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전화를 끊고 몇 분도 안돼 어떤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대형 카페 옆 큰 저택 같은 집에서 함께 나왔다. 아주머니는 사고 현장에 서있는 나를 보며 다시 한번 전화로 이야기했던 말을 반복하셨다. 같이 나온 아저씨는 범퍼를 쓱 확인하고는 사람 좋은 말투로 그냥 칠하면 된다며 괜찮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범퍼를 다시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찌그러진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했고 아저씨는 "에이 그럼 보험 처리 하면 되겠네, 괜찮아요. 보험 처리 해주면 돼요."라며 내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연락처를 교환한 후 처갓집 가족들은 다른 차에 태워 먼저 보내고 아내와 함께 차에 남아 보험사에 사고를 알렸다. 그때까지도 나간 넋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차에서 회복(?)하던 중 문자가 하나 왔다.


'OO(카페 이름)인데요. 보험 접수는 하셨나요?'


아 그때 깨달았다. 그 카페의 사장님과 사모님이셨다는 것을. 그 카페는 자체로도 유명하지만 카페 외에도 도심에는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하는 규모가 큰 사업체였다. 그리고 좀 전에 사장님과 사모님이 나왔던 그 카페 옆 큰 저택 같은 집도 함께 떠올랐다. 나는 신속하게 보험 처리를 해준다고 답장을 했고, 이후 실제로 차가 수리되어 다시 그 사모님께로 돌아가기까지의 기간도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차 사고를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의 과실이 100% 일 때 상대방의 차가 수리 센터에 들어가 있는 동안 발생하는 대차 렌트비만 해도 만만치가 않다. 수리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자칫 제조사 공식 서비스센터에 입고라도 하게 되면 수리 기간이 더 길어져 렌트 비용과 함께 보험처리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한 수리로(부품 전체 교환 등) 이참에 뽕(?)을 뽑으려는 시도들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하지만 그분들은 근처 공업사에서 수리를 하셨고 무리한 범퍼 교환 같은 것도 없이 깔끔하게 처리를 해주셨다. 연식이 좀 됐지만 아우디의 고급 모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보험 처리 비용은 같은 사고 기준 일반 국산 준중형 승용차와 비슷하게 청구됐다.


생애 첫 사고로 이런 분들을 만난 건 정말 나에게는 최고의 행운이었다. 물론 내가 그분들의 카페 손님으로 방문하여 발생한 사고였기 때문에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그렇게 진행해주셨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당시 상황에서 가해차주인 내게 오히려 위로를 해주고(넋 나간 내 표정도 한몫했을 수 있지만) 신속하게 처리해준 것은 흔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끼는 내 소유물에 해가 가해졌을 때 그런 여유를 가지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자여도 마음까지 부자인 사람은 많지 않다.


처리가 다 끝났다는 보험 회사 관계자의 전화를 받은 후 사장님께 문자를 보냈다. 첫 사고여서 경황이 없고 불편을 드려서 정말 죄송했는데 이렇게 많이 배려해주셔서 감사했다고, 늘 번창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란다고 솔직한 내 마음을 보내드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음에 내가 그런 일을 당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도 그렇게 여유 있고 멋있게 대처해야겠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돈부터 많이 벌어야겠다는 결심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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