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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나에게

by 문홍

2024년 어떤날.


'내가 세상과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세상 속으로 밀어주는 이가 있다면 그때 신이 잠시 내 곁에 머물렀던 순간이다'


그 누군가를 가장한 천사들이 나를 들어 올려 주었고, 11월의 브런치스토리가 나를 세상 속으로 밀어주었다.

아직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세상 속으로 다시 던져졌던 한 해였다.


'닐 도날드 월쉬'가 지은 책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 신이 말하는,

우리가 세상에 남아서 할 일이라는 것은

'단지 '나'로 사는 것!, '내'가 곧 신이기에 세상을 나의 창조물로 만들며 살아가라는 것!, 그렇게 살다가 두렵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라!'

이 짧은 메시지에 나의 온 우주가 담긴 듯했다.


세기가 바뀌는 그 시점에 나는 살고 있다
커다란 책장 한 장이 넘어가며 내는 바람을 느낀다
신과 너와 내가 적어 넣었고
낯선 사람의 손으로 높이 젖혀지는 책장에서 일어나는 바람을...
새로운 페이지에 눈이 부신다
거기에서 또 모든 것이 생성하리라
갖가지 조용한 힘이 저마다의 넓이를 살피고 있다
그리고는 애매하게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릴케 [세기가 바뀌는 그 시점에]

한 세상이 끝나는 전쟁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겪을 만큼 겪어야 끝이 난다.

그 안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처절하게 고뇌해야 끝이 난다.

절망의 시간, 고통의 시간, 참회의 시간은 '나'를 찾는 시간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시간일 것이다.

그 시간들을 버티면서, 그 한계를 버티면서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라는 나의 내면의 울부짖음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무차별하게 지독히도 혹독한 세상의 고통이 나에게 싸움을 걸어온다.

마치 조직적으로 철저하게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무장군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무차별공격을 한다.

싸워야 한다. 그러나 그 싸움은 반드시 내가 이기는 싸움이란 걸 알고 싸워야 한다.

끝도 없는 수렁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는 것 같으면 기꺼이 들어가야 한다.

칠흑 같은 그곳에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안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수만 번의 흔들림, 수천번의 좌절, 수백 번의 실망 그 끝에서 최악의 결말을 상상하게 된다.


짧게는 2년, 3년 혹은 더 긴 시간을 버텨내야 했다. 이 시간들이 지금 돌이켜보니 '나'를 찾는 시간들이었다.

나는 그랬다.

처음 일 년간 이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고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바로잡아보려고 모든 인맥과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스스로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혹독하게 나는 내쳐졌다. 스스로 항복하고 무릎 꿇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서 모든 것이 떠나가고 벌거벗은 '나'만 남았다고 느껴질 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아직 알 속에 갇혀 있구나! 여기서 나가야 하는구나!'


전쟁의 상처


상상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과 불안과 우울이 나를 삼켜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를 더욱 안으로 가뒀다. 일체의 외부활동을 끊은 채 스스로 골방에 밀어 넣었다. 숨을 내쉬는 것조차 내가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은 압박이 나를 짓눌렀다.

정체불명의 신에게 마음속 깊은 곳의 간절함을 담아 기도했다.

'제발 저에게 여기서 나갈 수 있는 자유만 허락해 주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마음으로 기도하고 편지를 쓰듯이 기도하고 어떤 형태든 나의 간절함을 표현할 수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날 내가 하루종일 무언가를 쓰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됐다.

필사를 하고 있었다. 어느 신문사의 칼럼이나 내가 좋아했던 책들을 필사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허무하게 시간만 흘러갔다.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는 나의 삶 속에서 나는 최소한의 자원으로 버티는 방법을 배웠다.

말을 최소화하고 물질을 최대한 아끼면서 아끼고 쪼개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걷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버스요금이 없어서 걸어다는 날이 많았고 커피값이 없어서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더 마음이 단단해지고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었다.

숨고 싶을 만큼 절박한 상황이 많았고 포기하고 싶은 매 순간들이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내가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다.


골방에 틀여 박혀 2년의 시간을 버티는 동안 나는 스스로 강해져 가고 있었다.

허무하게 시간만 보낸다고 생각했던 필사노트가 수십 권이 쌓여가고 버스요금이 없어 걷기를 반복하다 보니 다리에 근육이 붙어가고 있었다.

그냥 보낸 시간들이 아니었다. 절박했던 삶 속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키워가고 있었다.

어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깨달음을 얻고 눈물을 쏟아냈던 시간들이 나를 키워가고 있었다.

그동안 세상으로부터 받은 멸시와 조롱과 고통이 내 가슴에 새겨져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왜, 나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 모든 물음의 시작이 나를 알게 하는 시작이었다.

이 모든 물음의 시작이 내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게 하는 시작이었다.


이제 나는 나를 믿기 시작했다.

내가 알던 것보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는 것, 내가 알던 것보다 나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


지독했던 2024년은 내 인생 최고의 어떤 날로 기억될 것이다.


*사진: Pinterest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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