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리면서 새벽의 첫 숨결이 숲의 웅장함을 쓸고 지나간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숲의 장관이 TV 모니터를 가득 메웠다.
거대한 나뭇결이 만들어 내는 파도, 안개 낀 능선,
그 위로 Tow Steps From Hell의『 Heart of Courage』
(투 스텝스 프롬 헬 – 하트 오브 카리지)의 전주가 내 심박수를 올리며 서서히 밀려들어왔다.
머릿속에서는,
영화 『나니아 연대기』의 '새벽 출정호'가 안개 낀 바다로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영상이 그려졌다.
그것과 지금 이 숲의 장관이 마치 같은 영화를 보는 듯 한 오묘한 일체감을 주었다.
낮은 음역대의 현악 사운드가 심장을 울리며 시작할 때를 기억한다.
잠시뒤 이어지는, 강하고 묵직하게 나의 심장을 움켜쥐던 최고조의 오케스트라 협연.
'새벽 출정호'의 선두에 서 있는 루시, 에드먼드, 카스피안, 유스터스.
그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것, 가야만 한다는 것.
그것은 그들의 심장을 벅차오르게 할 만한 결심이 들어있던 눈빛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마음에 투영되는 눈빛을 읽었다.
『나니아 연대기』의 그들처럼 두려움이 가득 담긴 눈빛과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눈빛.
내가 마치 '새벽 출정호'에 탑승한 것처럼 느껴졌다.
돛대도, 키도, 바다도 없지만 숲은 파도처럼 일렁였고, 땅은 배처럼 흔들렸다.
주저앉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했지만 나는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진짜 용기는... 자기 안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거야!’라고
영화에서 '루시'가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드론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울창한 숲에서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벅찬 감동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샘을 자극했다.
음악의 마지막 파장이 숲의 능선을 따라 사라질 때 나의 눈도 조용히 안갯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른 새벽, 감당할 수 없는 어떤 벅찬 감동이 나의 가슴을 깨웠다.
수년 전에 봤던 그 영화의 감동이 다시 되살아나면서
그때 느끼지 못했던 다른 감각들이 지금 나를 깨우고 있었다.
'새벽 출정호'는 무엇을 향해 두려움을 안고 동트는 새벽을 나아갔을까?
사라진 7명의 기사들을 찾기 위함은 단지 표면적인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항해하는 여정 중에 알게 되는, 각자의 '어두운 그림자'를 마주하게 하는 것이 이 여정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열등감과 질투, 과거의 죄책감, 탐욕과 오만, 자존감의 상실과 같은 내면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 보면서, 고통스럽지만 스스로 자신을 찾아가는 그러한 여정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세계의 끝에서 그들은 용기, 희망, 믿음을 배우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것이 허무한 죽음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다음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길임을 알고 홀로 떠나는 '리피치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새벽 출정호'의 항해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떠났던 배였다는 것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제는 네가 스스로 항해할 수 있다고,
어떤 폭풍우를 만나더라도 그것은 너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그러니까 용기와 믿음을 갖고 두려움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그동안 나를 두려움에 가두었던 그 숲에서 새벽의 여명을 가로지르 듯, 나는 깨어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원래 그렇게 하기로 약속돼 있던 것처럼,
그 안에 있던 내가 스스로 저항했을 뿐 숲은 조용히 그곳에 있었다.
그저 내가 여기 찾아왔고, 스스로 그 이유를 찾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 벅찬 감동은 고요한 진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람이 왜 부는지,
소리 하나하나에 왜 몸을 부들부들 떨었는지,
나무들은 왜 나뭇잎을 떨어트리는지,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눈은 왜 내리고,
비는 왜 내리는지.
그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나고 있냐고,
숲은 세상을 향해 묻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도 왜 이곳에 왔는지 묻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묻지 않았다.
언제 돌아오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 숲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