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 중에서-
홍아,
이제야 비로소 네가 나를 향해 작은 손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
“그래, 나 여기 있어. 천천히 와.”
나에게 오는 길이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거 알고 있어.
깊고, 어둡고, 두려운 길을 지나야 하거든.
네가 살아온 모든 날들에 나는 언제나 여기 있었고
네가 생을 다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순간에도 나는 여기 너와 함께 있을 거야.
나는 너의 모든 순간에 너의 이름을 불렀고
너는 나의 모든 순간마다 어떤 의미였어.
하지만,
너에게 나는
고통이었고, 두려움이었고, 수치스러움이었고, 분노였고, 절망이었어.
이것들이 모두 네가 나에게 붙여준 이름들이었어.
그래서, 나는 너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없었던 거야.
홍아,
나는 네가 왜 나에게 그런 이름들만 붙여줘야 했는지 알고 있어.
네가 그런 이름들을 붙여가며 걸어온 시간들을 나는 언제나 함께 했잖아.
네가 울고 있던 시간, 절망하던 시간, 두려움에 떨고 있던 시간,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정리하던 그 모든 안타까운 시간들을 나는 너와 함께 했잖아.
그 모든 순간에 너는 나를 부르지 않았고, 그저 그 시간들을 나는 인내할 수밖에 없었어.
너에게는 그 어떤 의미도 될 수 없었던 거야.
홍아!
이제 저 멀리서 네가 나를 부르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
어둡고 무서운 시간 속을 걷고 또 걸어서 어렵게 얻은 아주 작은 등불하나 손에 들고, 나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고 있는 네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이고 있어.
너를 만난다는 생각에 내 가슴이 콩닥거리고 벌써 얼굴이 빨개졌어.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거 처음이잖아.
너는 나를 만나면 서러웠던 눈물부터 흘리겠지.
나는 다 알고 있어.
네가 걸어온 그 길에서 네가 이름 붙였던 나의 모든 조각들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네가 수줍게 나에게 오려고 그 시간들을 버티기 위해 붙여진 이름들이었다는 걸.
네가 나에게 도착해서 나와 눈을 맞추고 나의 이름을 부를 때,
나는 기꺼이 너의 꽃이 되어줄게.
너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등불이 커다란 빛으로 밝게 빛날 수 있는 그런 의미가 될게.
그러니까, 천천히 늦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나에게 와.
나는 여기 있어.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