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부활': 네흘류도프의 참회

3류 통속드라마에서 기독교적 갱생을 담은 고전으로

톨스토이의 '부활'은 '안나 카레니나'의 인기에 묻혀서 저평가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톨스토이의 작품치고 명작 아닌 게 어디 있을까? 주관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나는 개인의 병리적인 심리묘사를 파고드는 도스토예프스키보다는 확고한 종교적 신념 하에 도덕과 사랑을 설파하는 톨스토이에게 더 기운다.)


'부활'은 러시아 공작 네흘류도프가 법정에서 우연히, 자신이 젊었을 때 타락시킨, 자신의 고모의 양녀이자 하녀인 카츄사가 살인누명을 뒤집어쓰고 끌려온 것을 발견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네흘류도프와 카츄사는 한때 사랑을 했으나 네흘류도프는 그녀의 정조를 가진 후 카츄사를 떠났고 카츄사는 네흘류도프의 아이를 낳은 후 네흘류도프의 저택에서 쫓겨나 유곽으로 흘러 들어가 매춘부가 된 것이다.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것을 깨달은 네흘류도프는 깊이 뉘우치고 카츄사의 구명 운동을 펴는데... 그 과정에서 러시아 귀족의 타락과 정교회의 위선, 그리고 러시아 민중과 농민의 고단한 삶에 주목하게 된다.


그렇다면 21세기 현대에 '부활'을 다시 보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제정 러시아 시대 귀족과 정교회의 위선과 타락을 고발하는 사회비판 작품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리고 교도 행정과 농노제, 그리고 토지 사유제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적 작품이라는 의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간 본성에 내재한 죄의 실체를 깊이 있게 파헤치고 그 죄로부터의 구원과 부활의 방법을 모색한 정신적이고 영적인 작품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남녀의 로맨스, 하룻밤의 정사, 그리고 이별과 재회라는 통속적인 내용을 담은 ‘부활’은 언뜻 보기에 3류 드라마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멜로드라마를 최고의 고전 중 하나로 드높인 것은 바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네흘류도프의 깨달음과 그 참회의 행위를 통해 보이는 톨스토이의 기독교 가치관에의 귀의이다. 기독교는 자신이 죄를 지었으며 구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어떤 인간이든, 아무리 선하든 이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된 사람은 절대자의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네흘류도프는 속죄의 방법으로 매춘부로 살았던 카츄샤와 결혼하기로 결심하는데 (물론 순수한 사랑의 감정보다는 도덕적인 의무에 가깝지만 말이다) 이것이 쉬운 결정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쾌락주의자였던 네흘류도프가 변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아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네흘류도프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결심하는데 성경말씀이 통째로 인용되면서 종교적 메시지가 너무 날 것으로 제시되는 바람에 소설 속으로 충분히 극화되어 녹아들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결론적으로 '부활'은 명작이다. 종교적인 의미에서든 사회비판적인 의미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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