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짓 바르도는 왜 자꾸 훌러덩 벗는가
세계영화 중 명작이 많이 있겠지만 고다르의 '경멸'은 호머의 오디세이라는 고전을 모티프로 영화제작 산업과 부부의 관계를 빗대어 표현한 명작이다.
'경멸'은 한 무리의 영화제작팀이 프란체스카(영화제작자 프로코쉬의 여비서)가 앞으로 걸어 나오는 것을 돌리 카메라로 촬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카메라는 프란체스카에게서 시선을 떼어 관객을 정면을 쳐다보는데, 이것은 '경멸'이 '영화 찍기에 관한 영화'에서 더 나아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굉장히 실험적인 영화임을 보여준다.
다음 장면에서 '경멸'은 남자주인공인 극작가 폴이 아내인 벌거벗은 카미유(브리짓 바르도)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부부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경멸이 '영화 찍기에 관한 영화', 즉 '자기반영성'과 함께 영화 '경멸'의 주된 주제가 된다.
폴과 카미유는 처음에는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으로 나온다. 카미유가 자신의 모든 신체적인 부위를 사랑하냐고 폴에게 묻고 (육체만을 이야기하는 게 좀 웃기기는 하다) 폴은 그렇다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활비에 쪼들리는 폴은 헐리우드 영화제작자 프로코쉬에게서 시나리오 집필을 제안받고 거액의 돈을 받은 후 변하기 시작한다. 프로코쉬는 신(神)이니 시(詩)니 하는 것에는 질색을 하고 벌거벗은 여배우의 모습에나 실실거리는 천박한 인물인데, 프로코쉬가 카미유를 탐내는 것을 아는 폴은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카미유를 지속적으로 프로코쉬에게 들이밀며 불륜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물론 카미유는 이에 반발하면서 폴을 미워하고 경멸하게 된다.
폴과 카미유의 사랑과 갈등이 묘사되면서 한편으로는 '영화 속 영화' '오디세이'가 제시되는데, 우리는 영화 '경멸'의 폴과 카미유의 관계가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관계를 비튼 것임을 깨닫게 된다.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충실했다면 폴과 카미유는 서로 이용하고 의심하고 싸우기 때문이다.
영화 '경멸'은 또한 헐리우드 영화제작 관행에 대해서도 비판하는데, 영화에 철학적 의미를 담고자 하는 감독 프리츠 랑(영화에서도 영화감독으로 나온다)과 달리 헐리우드 영화제작자 프로코쉬는 돈과 흥행을 쫓아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영화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한편 영화의 후반부에서 자신의 계획대로 카미유를 거의 잃게 된 폴 역시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자신은 돈벌이만을 위한 시나리오 쓰기는 싫다고 거부하는데, 자본주의적 영화제작과 거리를 두기 원하는 프리츠 랑 감독과 폴은 일정 부분 고다르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저나 영화 '경멸'에서 브리짓 바르도는 줄곧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오는데 (침대에 누워 엉덩이를 드러낸 모습으로, 썬탠하는 나신으로, 전라(全裸)로 수영하는 모습으로) 자본주의적 영화제작을 비판하는 고다르 감독이 정작 자신은 상업적 실패를 면하기 위해서 여배우를 계속 벗긴 것일까? 아마도 '경멸'의 영화제작자가 그런 장면들을 요구했으리라고 추측되지만 결국 고다르도 자신이 비판하는 프로코쉬와 무엇이 다른지... 세기의 섹스 심벌 브리짓 바르도의 노출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아쉽다.
후기. 그나저나 영화의 배경이 된 카프리해의 풍광은 눈부시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