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음악에 관한 기존 관념을 뒤엎고 소리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다

이전까지는 어떻게 하면 피아노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던 고전, 낭만주의 작곡가들에 대해 포스팅했다면 오늘은 피아노로 전위적 실험(혹자는 선구적인 혁신이라 부를 테고 혹자는 괴상한 장난이라고 부를)을 했던 존 케이지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 한다.


존 케이지는 도발적인 실험을 통해서 음악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한계를 넓히려(깨려?) 했던 전위예술가인데, 대표작 '4분 33초'는 피아니스트가 피아노에 앉아서 4분 33초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끝나는 공연이다. 이 공연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아니라 관객의 침묵과 바스락거리는 잡음만 들리는데, 음악이 단순히 악기 소리뿐만 아니라 소음과 잡음까지도 포함해야 한다는, 아니 더 나아가 소음과 침묵만 가지고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정형화된 클래식 공연의 음악 개념에 대한 반발을 보여준다.


사실 고전, 낭만주의(더하기 바로크와 인상주의 정도)에 국한되어서 연주되기 일쑤인 클래식 음악 공연에서 현대음악은 반갑지 않은 손님인 것 같다. 무조 음악(어쩌면 이것도 현대음악계에서는 유행이 한참 지난 사조인지도 모른다)이나 우연성 음악, 한국 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인 진은숙씨 음악 등을 들어보면 불협화음, 전자기계음, 괴상하게 들리는 시도들로 마음이 불편해지며(이것도 의도한 바라면 할 말이 없다) 음악의 영역을 넓힌다는 시도들이 과연 음악을 더 음악답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필자는 음악이란 자고로 듣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평균적인 일반인이기 때문에 음악을 개념적으로 분석하고 해체하는 현대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나마 듣고서 충격과 함께 음악 강좌나 교과서에 실릴 만한 현대음악이란 생각이 든 작품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애가'였는데,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희생자들에게 헌정된 이 작품은 기존 악보가 아닌, 악기를 연주하는 특수한 표기법을 발명함으로써 시각적인 새로움을 안겨주었으며, 기괴한 음괴와 음향을 사용함으로써 (작곡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원자폭탄의 공포와 그로 인한 학살을 청각적으로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다면 똑같은 레퍼토리가 항상 반복되는(물론 연주자에 따라 해석이 다르긴 하지만) 클래식 음악과 그들만의 리그에서 상아탑을 쌓은 채 대중으로부터 소외된 현대음악의 간극을 잇는 음악은 무엇이 있을까? K-pop 같은 대중음악? 판소리 같은 전통 민속음악? 모르겠다. 음악은 각 쟝르의 특징과 팬층이 있으며 크로스오버나 퓨전을 통해서 발전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냥 정통 클래식 음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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