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저자는 어디까지 독선적이고 교만할 수 있는가
말했듯이 수전 손택의 도서들을 찾아서 읽고 있다. 전에는 미친 것처럼 한 달에 일이백만 원어치씩 책을 산 적도 많았으나(소위 원서는 가격이 후덜덜하기 때문이다) 그 책들이 이사 가면서 다 버려야 되는 폐기물이 되는 것을 보자 그 이후로 웬만해서는 책을 잘 사지 않는다. 한 달에 네댓 권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본다.
간만에 다시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글을 읽으려고 시도했는데 역시 등산을 하는 것처럼 힘들다. 자신의 지성을 자랑하려는 듯 친절하지 않은 저자의 단어 선택과 무리한 은유들이 독자로 하여금 개념들을 따라가고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물론 독서가 무용지물이라는 것은 아니다. 읽다 보면 몇 페이지에 한 번씩 마음에 와 박히는 멋진 구절이나 머리를 땡 치는 놀라운 선견지명을 발견하기도 한다. 왜 다리 아프게 힘들게 등산을 하다 보면 (물론 나는 등산을 거의 하지 않지만 말이다) 가끔씩 골짜기를 흐르는 시원한 개울이나 돌틈에 피어있는 작고 아름다운 꽃을 발견하듯 말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나도 이제는 가성비를 따지게 되는 것 같다. 책의 가격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저자가 어느 정도까지 독자를 의식하고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하는지 말이다. 소위 말하는 대부분의 이론서들은 극악무도할 정도로 불친절하다. 독자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하는 태도로 혼자서 머릿속의 엉켜있는 개념들을 풀어내기 바쁘다. (참고로 수전 손택의 난이도는 아주 높은 것은 아니지만 논리의 비약이 조금 심하고 삽십대에 쓴 글들이라 단정적인 어투도 많은 것 같다. 그렇지만 문학과 예술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느껴졌고 비평가이자 해석자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충분히 숙고한 흔적도 느껴졌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철학서나 이론서를 읽지 않는다. 대학에서도 다루지 않는데 일반대중은 기껏해야 자기계발서를 사서 읽을 뿐이다. 인문학이 돈이 안된다고 하지만 사실 이건 저자들의 책임도 있다. 좀 쉽게 써주었으면. 자기 자랑만 하지 말고 말이다. 독서의 경험은 발신과 수신이 합쳐진 의사소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