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사랑, 사랑, 사랑

나를 스쳐 지나간 그대. 죄인을 용서하소서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지만 사랑은 해보는 것이 덜 후회가 될 것 같다. 나의 경우 타이밍이 안 맞거나 나와 상대방이 서로 맞지 않거나(나의 부족함이 원인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지만, 되돌아보면 그 감정들은 일종의 정서적 몰입(infatuation)이었고 한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은 내가 사랑에 대해서 회의론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만큼 관계 맺기와 사랑에 대해서 미성숙하고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삶에서 낭만적인 영역만큼 운명적 만남을 강하게 갈망하는 영역도 없다"라고 했는데 사랑이야말로 이 운명과 낭만을 가장 자주 소환하는 영역인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 빠질 때 우리는 사실 피부 한 겹의 외모와 우연적인 취향의 일치, 자신의 결핍을 모두 보상해 줄 것 같은 배경과 능력의 아우라에 넘어가지 않는가. 여기에 덧붙여 가슴이 두근거리는 신체적 반응과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한 맹목적인 애착이 가세하면서 사랑의 감정은 폭풍처럼 우리를 휩싸게 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사랑은 단지 좋아하는 감정 그 이상이며 책임이 뒤따르는 행위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많은 경우 주기보다는 받기를 즐겼으며 사랑의 유통기한이 지난 다음에는 냉정한 손익계산서가 뒤따르는 줄을 몰랐다. 사랑과 한쌍을 이루는 결혼 역시, 그것을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가족의 승인과 이어질 현실적 조건과 상황이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모든 것을 감싸고 덮어주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는 인격의 수양이 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참회한다. 이기적이었던 나를 스쳐 지나간 남자/들에게 용서를 빌고 또 나도 그를 용서한다고. 죄인들을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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