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사랑의 종교에서도 2등 시민이냐?
기독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식 낳는 일 말고 무엇 때문에 여자가 만들어졌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라고 말했다. 기독교의 근간은 이것이다. 죄로 인해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해산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그 마저도 여성의 탓을 한다. 태초의 여성인 하와가 태초의 남성인 아담을 넘어지게 했다. 여성 때문에 남성이 죄에 빠지게 됐다.
신의 형상을 닮은 남성과 그 남성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여성. 남성의 몸에서 나온 여성. 남성의 부속품인 여성.
하지만 태초의 여성은 주체적이고 투쟁적이었고, 태초의 남성은 수동적이며 남 탓밖에 할 줄 몰랐다.
종교가 가부장제와 결탁하여 가부장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이용되었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본 사람들이라면 다 깨달았을 사실이다. 아무리 시대적 배경을 통해 이해한다고 설치고 여성신학을 떠들어도, 결국 이 종교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은 남성이다.
피를 흘리면서도 죽지 않는(정혈) 여성을 선망하여 자신들의 생식기에 칼을 대 강제로 피를 냈다.(할례의 기원 중 이러한 설이 있음) 생산성도 생명력도 없는 남성들은, 생명 그 자체인 우월한 여성들을 자신들의 발 밑에 두고 싶었다. 그래서 거부할 수 없는 신의 존재를 만들어 내 여성을 2등 시민으로 밀어냈다.
기독교의 중추를 담당하는 성경은 여성을 오직 남성의 부속물로 인식한다.(더 웜카인드 中)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이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전 14:34~3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라오가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 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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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웜카인드에서도 지적했듯 종교는 여성을 부차적인 존재로 치부한다. 천주교에선 여성은 아무리 애써도 신부가 될 수 없고 개신교에서도 여성은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없는 교단이 아직까지 존재한다. 단순한 모임에서조차 여성은 장이 될 수 없는 곳도 있다.
하지만 기독교 시스템은 여성의 희생과 봉사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도 많은 여성들이 신의 뜻이라 말하며 남성들의 노예노동을 자처한다.
여자들은 교회에서 '잡일'을 한다. 식당에서 음식을 나눠준다던지, 간식을 준비한다던지. 나이가 많은 적든 그것은 여성의 일이다. 교회에서도 '집안일'이라고 치부되는 것들이 여성에게 맡겨진다. 예를 들면 아동부, 유아부, 유치부는 여성 사역자가 담당하게 하는 것 말이다. 이때의 키워드는 '육아'. 아이는 여성이 봐야지, 혹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아이를 더 잘 돌볼 거라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
앞에 인용했던 성경구절을 바탕으로 여성이 할 일이 그것이라며 여성을 주방으로, 식당으로, 부수적인 공간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은 자신의 쓰임에 감사한다. 더 큰 것을 바라지 않고(욕망을 제한당함), 잠잠하고 그러면서도 지혜로운 여성으로 있기를 바란다. 자신이 할 일이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다. 그렇게 여성은 공짜 노동력이 된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여성신학에도 잠시 발을 담갔던지라 저 구절이 어떤 식으로 다르게 해석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결론은 "그러면 뭐해"였다. 내가 아는 해석은 주류 해석이 아니다. 남목사들은 여성이 남성에게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그렇게 가르친다. 교회에서 여성은 절대 주가 될 수 없다. 여성은 머리가 될 수 없다.
그런 구조를 유지하는 것에 기여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 밖으로 나오는 것만이 구조를 부술 수 있다. 여성이 다 같이 '주일 예배 파업'을 하면 한 주라도 교회가 멀쩡히 굴러갈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