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추천 영상으로 개콘 영상이 뜨길래 오랜만에 개콘을 봤다. 정확히 말하면 옛날에 있었던 코너들.
옛날에 코미디언을 꿈꿨을 정도로 개그를 좋아했다. 개그 프로들을 하나하나 다 챙겨보다가(개그야랑 코빅은 1회부터 봄) TV를 안방에 두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시간이 없어져서(그리고 그때쯤 재미없어지기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보지 않게 됐었다.
그래도 내 유년시절을 촉촉허게 해 준 개콘이라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는데 다시 보니까...
너무 빻았다.
페미니즘을 알고 다시 접하니 내 추억 와장창. 시대를 생각하지 않을 순 없지만 그래도 여자 코미디언들에게 너무 박했고(이건 아직도 그럼), 여성 혐오를 숱하게 재생산해냈다. 이런 게 재밌는 거야. 여자 괴롭히는 게 참 재밌지?를 미디어가 앞장서서 보여줬다.
김치녀, 된 장녀는 너무나 쉽게 개그판에서 사용되었다. 개콘을 안 챙겨 보던 시절에 페북에서 우연히 보게 된 후 되게 좋아했던 코너가 있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길래 다시 봤는데 '된장녀'라는 단어가 2회차나 나오더라.(남코미디언이 너 된장녀야? 하면 코미디언분이 뭐? 된장녀? 넌 그냥 된장이야! 하는 식) 그 코너는 2014년 코너였다. 5년 전만 해도 저런 워딩이 쉽게 사용됐다는 점이 충격이었고 또 한편으론 메갈리아가 이 사회에 큰 공헌을 했구나 싶었다.
(아래 내용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의 개콘을 기반으로 쓴 내용이라 현시점과 좀 다를 수 있음.)
좋아했던 코너들과, 좋아하진 않았지만/혹은 모르지만 좋아하는 코미디언이 나와서 봤던 코너들을 다시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일단 개그판에 남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남코미디언들이 떼거지로 나오는 코너는 너무 많다. 남자들끼리 다 해 먹는다. 여자들이 없다. 미디어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혐오는 없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들이 존재함에도 보이지 않고 나오지 않는다.
여성 코미디언만 나오는 코너는 거의 없었다. 강유미, 안영미를 중심으로 하는 코너(GO GO 예술속으로, 순정만화, 분장실의 강선생님 등)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고 그 외에 것들은 기억하기론 여성들만이 출연하지만 심히 여혐적이었다.
그래서 그랬던 건지 뿜 엔터테인먼트라는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뿜 엔터테이먼트 - 김민경, 신보라, 김지민
혐오적인 부분은 다 차치하고, 코너 구성이 뭐랄까... 여성들이 돋보이는 구조였다. 사장(김ㅇㅎ역)의 역할은 뻔한 역할이긴 한데 다시 생각해보니 남자들끼리 우르르 나오는 코너에서나 뻔한 역할이었고 여성들 사이에서 쩔쩔 메는 남자 역할은 거의 없었다. 코미디언들이 '여자 친구'나 '극성 아줌마'나 그것도 모자라 의미 없는 '부차적인' 역할로 나오는 것이 아닌, 자기 유행어가 있고, 자기 캐릭터가 확실한 코너였다.(쟈나는 무시하자)
여자들만 나오는 코너 외에 여성들이 부각되는 코너는 거의 없다.
그러고 보면 참 개그 코너에서 여성들은 남자를 갈망하고, '여성적인' 매력이 없지만 '여성성'을 어떻게든 끌어올려 섹스어필을 하고, 혹은 여자 친구로 참 많이 나온다.
(글 쓴 후 최근자 개그콘서트를 봤었는데 재미없는 건 둘째치고 여성 코미디언이 여자 친구/아내 역할 아닌 코너가 없더라. 하나 있었는데 그마저도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음)
놈놈놈-안소미(여자 친구 역할 참 많이 하셨다...............)
진짜 너무............ 부수적인 역할이었다......... 여러 가지를 얘기할 수 있겠지만... 굳이 많은 얘기를 하진 않겠다.(애초에 남자 친구부터가 오바야)
예뻐 예뻐(코너 이름 참) - 김승혜
이건 진짜 몰랐던 코너였는데 글 쓰려고 이것저것 찾아보다 발견하고 딱 한편 봤는데 그냥 어이가 없었다. 예쁜 외모를 가졌지만 유치하고 철없는 여자 친구 때문에 힘든 남자 친구라는 내용의 코너였고 '반전 매력'이라고 하더라. 코미디언이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거 너무 화나고 이렇게 재능 많은 사람을 이렇게 밖에 못 살리는 건가? 아쉬워지게 만들었다.
제발 여자 친구로 그만 나와... 커플은 이제 재밌는 소재가 아니야.
안 그래도 없는 자리를 '여장'개그가 더 없애는데 한몫했다고 생각한다.(여장 워딩이 맘에 안 들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
정여사(;;;;;)
(아니 왜 진상 개그를 '여장'을 하고 하시나요)
'여장'개그가 웃긴 건 '여장'자체가 웃기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성'의 차림을 하는 것은 웃긴 것이다. 많은 남성들이 화장하고 치마 입는 것을 거부하고 수치스럽게 느낀다. 그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것 보며 웃기다며 소비한다.
전설의 레전드
여장하지 말고 그 역할 여자한테 줘.....(근데 그건 또 그거대로 으아아아아)
한 남 코미디언이 '여장'개그를 시작한 뒤로 여성 코미디언의 자리가 더 없어졌다. 남자가 여성의 착장을 함으로써 표현되는 우스움을 매개로 웃음을 전한다?
시대가 바뀌었다. 시청자들은 더 이상 그런 것에 웃지 않는다. 물론 요즘 코너 수준이 예전만 못한 것도 있지만, 불편한 게 많아졌다. 예전엔 그저 웃긴 요소였으나, 이제는 여성 혐오임을 깨달았다. 개그프로들은 더 이상 여성 혐오를 이용해 웃기지 말아야 한다. 여성을 희화화, 대상화하여 웃기는 것은 개그가 아니다. 그것은 혐오고 폭력이다.
예전에 내 꿈은 코미디언이었다. 코미디언이 되고자 나름 아이디어 수첩이란 걸 썼었는데 3개 쓰고 말았더라. 그중 하나는 여자끼리만 나오는 조직 개그였다. 이걸 썼을 때는 중학생이었다. 조직 개그를 좋아했다. 누아르를 좋아한다고 해도 무방하지. 멋지기도 했고 웃기기도 했다. 그걸 개그 코너에서 여자들끼리만 나오는 걸 보고 싶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런 코너는 나오지 않았다.
무한걸스에서 오프닝으로 하긴 했더라. 진짜 너무 웃김.
또 하나는 화장하는 개그, 여성 2명이 나와 화장을 하며 세간살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코너로 '여자는 정치에 관심 없다는 인식을 풍자한다'라고 써뒀더라.(지금은 화장 깨 부수면서 해도 모자람...) 중학생의 나는 페미니즘의 ㅍ도 몰랐지만 여성, 화장, 정치 3개는 미디어에서 양립할 수 없구나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여자는 정치에 관심 없어 라고 후려침 당하면서도 그것에 순응하며 사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개그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디어다. 아무 생각 없기 보기 쉽고 그만큼 무의식에 침투하기도 쉽다. 웃음을 약자로부터 꺼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ex. 바보-지적장애인 희화화). 하지만 이제는 그러면 안된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가장 쉬운 개그에서부터 보여줘야 한다. 원래 해학과 풍자는 강자, 권력을 가진 자를 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약자에게 가해지는 순간 폭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