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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불의 대화

by 로즈릴리

불/ 넌 운명에 대해 어디까지 생각해봤어?

숲/ 요즘 운명에 대해 묻는 이들이 많네


불/ 누가 또 물었어?

숲/ 며칠 전 새가 날아와서 묻더라 운명이 8할같다고


불/ 그랬구나 사실 나도 좀 요즘 운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어

숲/ 어떤 계기가 있었어?


불/ 최근에 내가 무지무지 사람들에게 슬픔을 안겨줬잖아

사실 내 의지가 아니었어 다 바람때문이라고

난 아름다운 숲과 산에 나의 불씨를 떨어뜨릴 생각이 전혀 없었어

바람이 나를 하필 산으로 몰고 간거야

그렇게까지 큰 불이 날줄 몰랐는데 내 의지가 아니었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숲/ 넌 너무 나쁘다

운명이었다느니 바람이 원인을 제공했느니 변명하기 전에 넌 나한테 사과 먼저 해야하는 것 아니야? 난 너 때문에 홀라당 다 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복구하려면 향후 20년은 걸린다고 하던데 복구가 제대로 될지도 모르고 말야


불/ 그래 미안해 너한테는 정말 죽을만큼 미안하다 이게 다 바람 그 나쁜애 때문이야

숲/ 바람도 엊그제 나를 찾아 왔는데 나름대로 고뇌가 깊더라


불/ 지가 무슨 뭘 잘했다고

숲/ 사람들이 좋아했다 싫어했다 변덕을 넘나 부리면서 바람이 잘못을 안 해도 사람들 기분이 내키지 않 으면 바람 탓을 한다나


불/ 그건 맞아 사실, 바람이 나를 이산 저산으로 거세게 몰고 가긴 했지만

처음 불씨를 떨어뜨린 것도 인간이었어. 산에 와서 부주의로 불씨를 떨어뜨려 걷잡을 수 없이 불길이 커진거야. 이래 저래 인간이 문제구나 자연을 훼손시키는 가장 문제의 원인은 항상 인간이었어


숲/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데 인간은 마치 자신들이 대자연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행동할 때가 많아

불/ 맞아. 신이 만든 모든 피조물의 일부일 뿐인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가며 자연을 정복하려다가 오히려 자연재해에 시달리고 있어. 지구 온난화며 환경문제며 식량문제며 인간은 반성을 많이 해야 해


숲/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인간의 이성이 과연 거대한 자연 앞에 얼마나 초라해지는지를 하루하루 느끼며 살고 있어

불/ 나도 이제 바람을 미워하는 감정을 내려두고 너무 열 내지 말아야겠지 ㅜㅜ 인간도 너무 싫어하지 않고.


숲/ 그럼,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필요한 존재들이고 모두 소중한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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