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에 돛 단듯 잔잔하게 살아가던 나에게 마른 하늘에 우레와 같은 날벼락을 당하고보니
그 후유증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한 번씩 마음이 심하게 무너지며 우울하고 속상함을 금할 길이 없다.
최근에 좀 심해졌는데 오늘도 지인들과 오월의 마지막 나들이가 예정되어 있었고 요리 솜씨가 탁월한 지인분께서 훌륭한 점심 식사 초대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몸이 안 좋다는 거짓변명을 하고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어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가 시간을 갖고 있다.
나에게 해를 가한 이들을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감정은 없다. 그들을 용서한건지 용서하지 않은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나가게 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것 같다.
그들에 대한 미움이나 증오의 감정이 없으므로 ‘보니 커트것’의 말처럼 생기나 활기가 없고 무감각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더 열심히 살아서 보란 듯 성공해서 그들에게 복수할거야’라는 생각이 일도 안드는 것은 그들을 이미 마음에서 용서한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톨스토이의 지적처럼 나의 허물과 과오를 조금이라도 인정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현실적인 불이익은 너무도 크고 마른하늘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날벼락이었다. 슬프다.
다만 현재 내가 가야 할 길과 내가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하고 싶은데 무너진 마음이 쉽게 복구가 안되니 몸이 안따라 주는 것이 속상하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트라우마를 겪어본 사람은 이제 사람들을 함부로 곁에 두지 못하고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는 선택을 한다.
활줄처럼 곧은 사람은 세상에서 쓰이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뛰어난 재능과 능력이 있는데도
시대적인 불운을 타고난 사람은 시대와 불화하여 스스로 고독한 길을 걷기도 한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세상을 놀라게 한 신동으로 불렸으며 당대 최고의 스승에게 서거정과 함께 동시대에 동문수학했다.
그러나 권력을 둘러싸고 벌어진 세조의 왕위찬탈로 두사람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서거정은 세조의 오른팔 노릇을 하며 일등공신이 되어 탄탄대로의 벼슬을 받고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김시습은 세조에 반대하고 단종의 편에 섰던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벼슬을 포기하고 평생을 전국의 산사를 떠돌며 생을 마쳤다.
그의 삶은 외롭고 고독했다. 나무와 바람과 물을 벗삼아 그의 사상과 철학을 펼쳤고 문인으로써 시와 소설을 써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었다.
그의 삶의 역경은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라 시대적 불합리한 현실의 횡포에 맞서다가 불운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지 그의 글에는 실존적이고 존재론적인 고민을 이야기했다.
정신적 방황 속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때로는 부조리한 세상을 조롱하고 자조하였으며 가끔 자기연민과 갈등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고뇌를 공감하고 삶에 대한 통찰을 보였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재능과 포부를 펼칠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린 채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어 고독하고 외롭게 살다간 김시습, 나는 그에게 고독했던 천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다음은 그의 시를 옮겨본다.
새 나는 바깥에 하늘은 다하건만
근심결에 한은 하염없구나
산은 대부분 북쪽에서 굽이쳐오고
강은 저절로 서쪽을 향해 흘러라
기러기 내려앉은 모래펄은 아스라이 깔렸고
배 돌아오는 옛 기슭은 그윽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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