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하늘처럼 연한 파랑이 아니라 남색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듯 진하고 새파란 파랑색은 그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평소 노란색을 즐겨 썼다는 그는 파란색 달팽이 모양의 파이프를 물고 자신이 좋아하는 샛노란 은행나무 앞에 앉아 있다.
이 영화는 대사가 별로 없다.
화가 출신인 슈나벨 감독은 대사 대신 주인공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나 배경에 대해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카메라에 그림이나 배경을 담으면서 예술의 혼도 함께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영화로 ‘고흐’에 대해 다루었던 다른 영화들에 비해 ‘고흐’의 삶의 전반을 다루기보다 말년에 관한 이야기를 특색 있게 다루고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을 잠시 소개한다.
동생 ‘테오’가 매달 250프랑을 주기로 약속하고 ‘폴 고갱’에게 아를에 내려와서 자신의 형
‘반 고흐’와 함께 지내주기를 부탁한다.
증권 브로커 출신이었던 ‘고갱’은 재미있는 대사와 함께 등장한다 .
“인류의 불행 중 가장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돈이 궁하다는 것”
증권 브로커 출신다운 말이다. 목사의 아들이었던 고흐에게 신은 자연이었다.
고갱과 고흐는 그림을 그리면서 사사건건 부딪히는데 두 사람의 대화는 이 영화에서 얼마 없는 대사 중 넘나 인상적이어서 기록으로 남겨둔다.
고갱/ 늘 자연만 그리면 바라 볼 것이 없으면 당황스러워, 자네의 것을 마음 속에 생각나는 것을 그려. 자연의 본질은 아름다움이니까
고흐/ 자연을 보면 가슴 떨리는 에너지와 신의 목소리가 들려 우리를 하나로 묶는 유대감이 느껴져. 때로는 너무 강렬해서 의식을 잃을 정도야
고갱/ 그 누구도 세상을 똑같이 바라보진 않아, 우리의 눈이 없다면 자연은 의미가 없지
같은 풍경앞에 앉아 있어도 모두가 같은 나무나 산을 보는 것은 아니라고, 모델이 아니라 자신 때문에 특별해지는 거라고
고흐/ 난 내면을 들여다 봐, 나는 그림을 창작하지 않아 그림은 이미 자연 안에 존재해 그것을 꺼내주기만 하면 된다. 난 평생을 혼자 방 안에서 보냈어, 그림은 밖에 나가서 그리고 싶어. 나 자신을 열광적인 상태로 그리는 거라고.
고갱/ 그림은 천천히 구상해서 그려야 해, 표면을 보면서 천천히 색칠해야 해. 자네의 그림은 그림이라기보다는 조각 같고 진흙 같아.
고흐/ 그림은 한 번에 깔끔하게 그려야 해, 색칠도 한 번에 깔끔하게 칠해져야 해.
성격 차이로 ‘고갱’은 아를을 떠나고 고갱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는 순간 ‘고흐’는 환청을 들으며 위협적이고 불안한 영혼을 느끼며 공포심에 자신의 귀를 잘라 버린다.
그리고 고흐는 생 레미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감독은 고흐가 37세의 나이로 권총자살을 했다는 것에 반기를 들고 영화에서는 동네 갱단 불량소년들의 권총에 맞아 죽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고흐가 죽은 지 124년이 지난 후 고흐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고흐는 자살도 타살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고흐가 어린 소년들에게 살인죄를 묻지 않기 위하여 자신이 총을 쏘았다고 자살을 인정하며 죽음을 맞는다. 젊은 고흐를 연기하는 63세의 배우 ‘윌렘 데포’는 리얼한 연기와 외모 면에서도 실제 고흐가 살아 돌아온 듯 강한 인상을 남겼다.
보석 같은 작품들을 눈앞에 두고도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던 시대를 지나 그 아름다운 작품들을 누릴 수 있는 몫을 우리에게 선물해주는 영원의 문에서 발견한 고흐의 예술혼을 잘 담고 있는 영화다. 고흐가 사망하기 3개월 전 그린 그림 ‘영원의 문가에서 슬퍼하는 노인’을 보고 감독이 영화 제목을 ‘영원의 문에서’라 했다.
‘풍경을 마주하면 내게는 영원만이 보인다. 나에게만 보이는 걸까, 자연도 나도 존재의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 반 고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