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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머무르자

by 로즈릴리

오늘 아침도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비 내리는 월요일 이른 아침 출근길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에게 먹히기도 하지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평소 아침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아파트 사람들은 지구에서 두번째 가라하면 서러워할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지 막히는 출근길을 고려하여 한시간에서 두시간 빨리 움직인다.

출근 시간이 9시인데도 7시 20분부터 나가기 시작하여 7시 45분 정도에는 아파트 주차장 삼분의 2 정도의 자동차가 빠져 나가고 없다. 참고로 여기 아파트 사는 사람의 직업이 절반 정도가 의사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의사다. 아들이 아파트 단지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부모님 직업 조사를 했는데 한 반 23명의 학생 중 삼분의 이가 의사였다. 나머지는 교수 학원장 약사 사장님 공무원 순이었다.


7시 50분 정도가 되면 교차로 지점 네개의 도로는 자동차들이 빽빽하게 점령하여 신호등의 신호가 무색할만큼 자동차는 꼼짝도 하지 않고 움직일 기미도 없다. 여기 저기서 간간히 길게 울리는 요란한 자동차 경적소리가 귀를 아프게 한다.

비가 내리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은 더욱 심하다.


추적추적 비가 아침부터 기분 나쁘게 내린다.

비가 내리는 소리와 비가 내리는 모양의 의성어 의태어 표현은 많지만 나는 오늘같이 기분 나쁘게 비가 내릴때 추적추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비가 와서 눈과 마음이 상쾌한 것이 아니라 불쾌지수를 높이고 몸까지 축축 끈적끈적 만드는 비다.





나의 아픔을 들어달라고 나를 좀 봐달라고 말하기 전에, 나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털면 털수록 더욱 고통스러워지는 까닭에 누구보다 충직하고 무엇보다 달콤한 잠을 선택한다.

우리의 몸은 정직하다.

육체적 또는 정신적 질병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몸의 감각이다. 의사들은 이러한 감각에 대해 질환의 이름을 붙여준다.

고혈압, 저혈압, 심장마비... 또는 공황장애, 우울증, 알츠하이머... 등등


몸과 마음이 고장나면 환자들은 언제나 냉철하게 행동하기를 요구받는다. 사람들은 고통을 잊으라고 아픔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이야 쉽지! 언제나 말은 쉽다.

사람들은 고통을 잊고 싶다고 말하지만 몸은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절망을 느끼는 마음을 감춰야 하고 삶의 흐름이나 패턴이 고장났지만 고장나지 않은 것처럼 의연하게 행동하기를 타인에게 스스로에게 강요받는다.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현대사회는 타인의 슬픔에 기꺼이 공감하는 태도를 보이다가도 그 슬픔이 나의 주변 영역에 존재하거나 관련이 되는 사실을 불편한 감정으로 치부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잠이란 나의 좋은 친구이며 나를 봐달라고 나의 아픔을 들어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으며 힘주어 소리칠 필요도 없다.


몸과 정신은 각각 안과 바깥에 따로 놓여있는 사물처럼 떼어 내어 분리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질병을 경험하는 몸과 정신(육체적 질병 또는 마음의 상처 정신적 고통 포함)은 단순히 병원의 처방이나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측정하는 고통으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픔을 잊고 고통을 극복해야한다는 정신의 강박이야말로 자신의 존재 자체가 그 몸과 정신의 일부임을 잊어버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오히려 혹독하게 고통의 댓가를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잠을 잘 자고 일어나면 의학적, 과학적으로 증명된 잠의 순기능까지 더해져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뿐하여,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말했던 너무도 평온한 상태인 아타락시아의 상태를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여! 잠을 자자.... 잠이 너희를 고통에서 자유케 하리라!’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고통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복잡하고 심각한 현대사회에서 불면증 환자는 증가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12년전 나는 정신적 쇼크를 심하게 당한 경험이 있고 그 후유증으로 3년 정도 불면증을 앓았다. 캄캄한 밤에 모두가 잠들어가는 새벽에 잠을 자고 싶어도 깨어 있는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지인 목사님께서 불면증을 앓았을 때 캄캄한 밤에 목사님은 불면증으로 힘들어하고 있는데, 옆에서 베개만 배면 잠이 드는 사람들을 이교도에 비유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본인도 잠이 올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고

양 1마리... 양 2마리 .... 양 일천사백칠십구마리......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셨지만 나는 목사님의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은 오히려 잠이 너무 많아져서 밤이면 밤마다 베개만 배면 잠이 드는 이교도가 되었다.

깨어 있어야 할 대낮에도 수시로 잠이 쏟아져 몇 분씩 꿀잠을 자는 것이 문제인데, 현재 불면의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다.

불면증은 완치될 수 있으며, 과거 불면의 밤과 치열하게 싸워 승리한 사람들이 있으니 현재 잠을 못 자거나 잠이 오지 않는다고해서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의 육체는 자신의 현재의 삶을 대변한다.

우리의 정신은 몸에 근거하며 우리의 몸은 정신에 근거한다. 정신과 몸을 따로따로 분리해서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몸과 정신은 인간 생존의 근거이며 잠을 잘 자고 나면 잠은 인간의 몸과 정신에 보약이 된다.


잠자는 아파트의 미녀가 되어 보자. 미인은 잠꾸러기니까!


9시가 출근인 우리 애아빠도 벌써 7시 20분에 작은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이미 출근길에 나섰다.

말년 휴가 나온 군복무중인 울 큰아들이 아직까지 자고 있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침밥을 먹는 것보다 잠을 먹는 것이 더 좋은지 꿈나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안그래도 훈남인데 얼마나 더 미남이 되려고 잠에 취해 일어나질 못할까...

아침형 인간인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야밤형 올빼미형인 울 큰아들이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기를 두 손 모아 주님께 간절히 기도 드린다.



Senorita / Kidz Bop K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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