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좀 망한 각이다. 어쩌면 조금이 아니라 대단히 망한 걸지도 모른다. 모 공공기관 청년 인턴 지원서 접수 마감일이었다. 3일 내내 지원서를 붙잡고 있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지난해 정규직 신입사원 채용 서류전형에서 ‘광탈’한 곳이라 지원서 작성에 더 공을 들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실은 그때도 자기소개서 글 퀄리티가 문제는 아니었다. 그때 내 앞을 막고 있던(걸로 추정되는) 벽은 이번에도 태산 같은 높이와 위용을 자랑했다. 이변이 없는 한, 이 취업 시장에서 나는 아마 앞으로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망했다느니,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거라느니, 서두에서부터 부정적인 넋두리를 했다. 반론이 예상된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혀를 찰 것이다. 30대면 앞길이 아직 구만리인데 너무 섣부르게 본인의 가능성을 재단한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젊은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비관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안타깝다. 무슨 마음이신지 이해한다. 취업 준비로 힘들다는 20대 중후반들을 보면 나도 그런 생각 하니까.
나도 안다, 내가 여전히 젊고 미래가 창창하다는 거. 그런데 일단, 육체적·정신적으로 아직 젊은 것과 ‘신규 취업 시장’에서 수요가 있을 만큼 젊다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지원자가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후반들과 경쟁해서 이기기란 좀처럼 힘들다. 드물게 매력을 인정받아 선택되는 30대가 있겠지만, 풍부한 직무 관련 경험이라든지 하는 나이를 상쇄할만한 특장점을 증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무기가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분야에서 백지 같은 초심자이다.
(물론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은 30대 초중반은 경력 이직 시장에서 펄펄 날아다닌다. 하지만 다시 상기해주면, 내가 뚫어야 하는 곳은 ‘경력 이직’이 아니라 ‘신규 취업’ 시장이다. 경력이 있긴 하지만 그 경력을 살려 이직할 수 있는 곳으로는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경위는 별도로 책 한 권을 썼다. 이 글에서 다 설명하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
내가 지원서를 쓰며 암담함을 느끼게 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일단 지원서 접수 페이지에서 이름과 연락처 등 기본정보를 적어넣는다. 다음으로 넘어가면 ‘교육 사항’과 ‘경험·경력 사항’란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나라에서 만든 직무능력표준에 따라 채용 기관이 작성한 ‘직무기술서’를 참고해야 한다. 내가 지원할 기관과 직무는 대분류 경영·회계·사무, 중분류 기획·총무·인사에 해당한다. 합격에 가까워지려면 해당 분야에서 사무 자동화 프로그램을 활용해 행정 업무 전반을 잘 해낼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고, 그런 종류의 경험을 했음을 보여줘야 한다.
이제부터는 단위 능력에 부합하는 내용인지 신경 쓰며 자기소개서 한 문항, 한 문항, 그 안에서도 한 문장, 한 문장 건조하게 득점해나가야 한다. 내가 예전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잘해 보이겠다는 열정 어린 포부를 밝히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위 직무능력에 부합하면 가점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내용이 될 것이다. 감점 요소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내 이력 중에는 새로 지원할 곳에서 득점할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 지금 나는 극히 불리한 지형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싸움을 하고 있다.
한 번이라도 구직활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취업준비생이 견지해야 유리한 태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아니, 취준생이 되고 나서 그런 태도를 취하면 이미 늦다. 그냥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예비 취업 준비생이라고 생각하고, 일관된 경험 서사를 쌓아 올려야 한다. 어느 직종을 선택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면, 적어도 여러 분야에서 공통으로 먹힐만한 경험이라도 찾아다녀야 한다. 그래야 나의 경험과 이력을 하나의 실로 꿰어 설명할 수 있고, 내가 준비된 인재임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
나도 한때 어리고 준비된 지원자였다. 대학 시절 나는 친구들보다 비교적 빨리 진로를 정한 편이었다. 기자가 내 천직이 되리라고 굳게 믿어서 학보사에 3년이나 붙어있었고, 시사 이슈에 균형 잡힌 시각을 기르려고 토론 동아리 활동을 병행했다. 요즘은 많이들 가는 해외 봉사도 봉사단의 현지 활동을 취재하는 기록 담당 단원 자격으로 갔다. 주 취재 분야로 특화할 정치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국회 보좌진 양성 과정을 수료했으며, 사회 변화를 위해 정치권에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했다.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언론사에서 인턴 기자 경력도 탑재했다.
이 풍부하고 탄탄한 뼈대에, 자소서 문항에 맞도록 적절히 살을 붙이면 언제나 훌륭한 서사가 완성되었다. 나는 서류전형에서 떨어져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두 번의 언론사 기자 생활 끝에 더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 모든 서사는 박살 났다. 나는 기자질 말고는 해본게 없는 책상물림 백면서생이 되었다. 새로 지원하는 직무와 최대한 유사성이 있는 경험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 각색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앞에서 내 미래가 아직 창창하게 남아있음을 안다고 썼다. 그런데도 이미 망했다는 직감은 기분 나쁘게 끈적끈적 들러붙어서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다. 최근 취업 시장이 자신의 ‘과거’를 증명해야 ‘미래’로 갈 기회를 주는 곳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능성의 씨앗을 지니고 있고, 씨앗을 키워갈 시간이 많이 남은 걸로는 부족하다. 회사들은 지원자가 스스로 씨앗을 성장시켜온 ‘과거’를 본다. 그 과거가 곧 미래의 가능성이다. 과거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적합한 사람인지 증명해낸 지원자가, 최대한 빨리 업무 적응을 마치고 능력을 발휘해 회사에 미래가치를 가져다줄 확률이 높다. 그런데 기자가 되는 데 올인했던 내 과거는 바꿀 수 없다. 이는 내가 아직 얼마나 젊고, 미래가 구만리 같이 펼쳐져 있는지와는 관계가 없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내게 창창한 미래가 남았다는 사실은 오히려 재앙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망했다손 치더라도, 박살 난 것은 취업 시장에서 준비하던 서사이지, 내 존재 자체가 아니다. 이런 글을 정리할 수 있는 것도 내가 여전히 건재해서 기록하고 있는 덕이다. 내 존재는 지원서 교육 사항, 경험·경력란에 쓰는 몇 줄 따위로 모두 설명할 수 없다. 내가 보고 느끼고 겪은 모든 것이 나를 구성하는 스펙트럼에 녹아있고,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틀을 갖춘 내가 됐다. 나는 지금도 새로운 서사를 완성해가고 있다.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은 내 지원서에 물을 끌어올 수원지도 곧 찾아낼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느리지만 느린 것이 부끄럽지는 않다. 하던 일에서 도망쳤지만 도망친 것도 부끄럽지 않다. 다만 나의 전선에서 지금의 불리한 전황을 직시할 뿐이다. 지금은 패색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필요 이상 비관하며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대책 없이 낙관하며 시간을 흘려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내 운명을 바꾸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다. 그건 지금의 내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