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을 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는 이제 ‘기자’에서 ‘작가’가 되었나. 얼떨떨하긴 하지만, 객관적인 조건으로는 그렇게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저자란에 내 이름이 적힌 책이 실물로 존재한다. 그 책을 80명 넘는 지인이 기꺼이 돈을 주고 사서 읽었다. 심지어 그중 일부는 감상문을 길게 써서 보내주기도 했다. 정작 기자일 때는 출입처나 업계 관계자 외에 일반 독자를 체감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도 내가 기자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책도 있고 독자도 있다. 그렇다면 의심할 이유는 없다. 나는 작가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책을 낸 뒤로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책이라고 해봐야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에 150p도 안 되는 얇은 문집에 가까웠지만, 내 능력에 비해선 너무 벅찬 일이라 탈고하고는 진이 다 빠졌다. 당분간 글과 떨어져 지내고 싶었다. 게다가 이제 현실로 돌아와 구직 일정을 밟아 나가야 했다. 아직도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은 농담조로 나를 류 작가, 류 작가 하고 불렀다. 글을 쓰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쑥스러움을 넘어 뭔가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았다. 나는 여전히 작가일까?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물론 다른 작가들도 책을 한 권 내면 휴식기를 보내곤 하지만, 나는 그런 경우와 다르다고 느꼈다. 어쩌면 이 휴식기가 무한정 길어져서 다시 글을 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항상 우선 집중해야 하는 다른 과제들이 있고,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각 잡고 글 쓰는 일은 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앞으로도 그렇다면 예전에는 작가였을지 몰라도 점점 아니게 될 것이다. 그저 책을 엮어낸 적 있는 사람일 뿐이다. 백번 양보해 한 번이라도 글을 써서 다수에게 읽혀본 이력이 있는 사람을 ‘작가’로 부른다고 하더라도, 이제 나는 ‘글 썼던 사람’이지 더 이상 ‘글 쓰는 사람’은 아니다.
퇴사기를 다룬 책을 내놓은 지도 1년여가 지났다. 그간 글도 쓰지 않았지만, 재취업에도 실패했다. 뭐 대단히 많은 곳에 지원서를 넣고, 모든 일상을 쏟아부어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나마 가고 싶던 곳의 서류전형에서 탈락하고 나니 후폭풍이 컸다. 대체 이제까지 뭘 한 거지? 다음 공고가 뜰 때까지 또 얼마나 세월을 흘려보내게 될지 막막했다. 마냥 허송세월할 수는 없으니 다른 곳에도 구직활동을 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아마 그 직장에 들어가 일을 하는 내 모습이 와닿지 않는 채로, 의무감에 꾸역꾸역 지원서를 넣을 것이다.
단순히 직장을 얻지 못한 문제라면, 다시 열심히 준비해서 어디든 언젠가 합격하면 된다. 그런데 그보다는 삶을 끌고 가는 동력 자체가 이미 예전에 꺼졌는데, 대체할 새 엔진을 오랫동안 찾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지금이야 취준 기간이 길어지니 취업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로 여겨진다. 그런데 솔직히 어디엔가 취업을 한다고 해도 그 뒤에 이어질 삶에 기대가 없었다. 취업의 기쁨은 짧고, 회사 생활은 지리하게 길다는 것을 이제 너무 잘 안다. 일을 계속할 단단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회사 생활은 그저 버텨야 할 고통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일에 마음을 주고 정착할 수 있긴 한 걸까. 나는 기자로 사는 길을 단념하기로 정한 이후 아직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만 같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삶이 정체됐거나 후퇴한다고 느낄 때, 의욕을 잃지 않도록 자신을 일으켜 세울 장치가 필요한 듯하다. 이를테면 여행을 다녀온다든지, 아침 운동 루틴을 만든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이대로 나를 오래 방치하면 무력감이 일상을 서서히 잠식하고, 결국 내가 망가질까 봐 두려웠다. 내게는 글쓰기가 스스로를 구하는 방법일지도 몰랐다. 두 번째 퇴사를 하고 나서도 책을 쓰는 일이 기자라는 길을 떠나보내는 데 꽤 도움이 됐었다. 이번에도 모호하고 복잡한 뭉텅이들이 머릿속에 엉겨 붙어 있는데, 그걸 어떻게든 글로 꺼내서 정리해야 뭐가 문제인지 알 것 같았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려고 글을 쓰면서, 한동안 러닝에 병적으로 몰두했던 이유와 취업시장 앞에서 내가 느끼는 절망감을 들여다봤다. 당연히 글을 썼다고 해결된 건 별로 없었지만, 답답함으로 들끓던 마음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신기하게도 바깥으로 꺼내는 것만으로 꽤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있는 그대로 글을 쏟아낸 다음에는, 최대한 내가 서 있는 실제 지형과 비슷하게 그려내려고 표현을 고르고 골랐다.
앞으로도 계속 나의 진실을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하게 쓰고 싶다. 내 글을 삶의 최전선으로 내보내서 싸우게 하고 싶다. 그러지 않고 흘려보낸 삶은 허공에 흩어져 사라진 듯했다가, 언젠가 다음 발을 디뎌야 할 곳을 자욱하게 가릴 것이다. 다행히 아직은, 한동안 글쓰기를 멈췄다가도 다시 간헐적으로 쓰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 글쓰기가 나와 함께 한다고 상상해봤다. 그렇다면 내게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버티고 앉아 절망하는 나를 들여다보고 글로 남기는 또 다른 내가 있다. 그런 나는 아무리 의욕 없고, 망가진 것 같고, 가라앉는 날에도 일단 키보드를 잡고 써 내려간다. 지금 처한 상황을 더듬어보고, 삶을 바로잡아보고자 애쓴다. 삶에서 재료를 얻어 도자기 빚듯이 글을 쓰고, 끝내 글이 다시 삶을 빚어낸다.
글을 계속 쓰면 정말로 새로운 삶의 동력을 찾게 될지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더라도 계속 써야 한다고 느낀다. 그렇게 쓰다 보면 인생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설령 마음을 다해 쓴 글을 나 외에 아무도 주의 깊게 읽어주지 않아도, 적어도 그 글은 내 안에 어떤 형태로든 녹아들 것이다. 그럼 언젠가 내가 내어놓을 언어의 재료가 되고, 어쩌면 누군가에게 의미로 가닿는 기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번만큼은 아무리 길어도 꼭 1000자 안에, 적당히 글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글 하나하나에 매번 온 영혼을 담아내려 들면 쉽게 지쳐서 꾸준히 쓰지 못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쓴 분량을 확인해보니 3000자가 넘었다. 다짐을 지키기에는 이번에도 글러먹었지만, 기분은 좋다. 고군분투한 끝에 이 글을 두고두고 참고할 이정표처럼 세워낸 것만 같다. 아마 조만간 또 글쓰기가 지긋지긋해져서 그만두고 싶어질 텐데, 잠시 쉬긴 하겠지만 곧 이 글의 존재를 기억해내고, 이 글을 쓸 때의 마음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빈 화면 앞에 앉아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이지러짐 없이 정확한 모양으로 짜내려고 온 힘을 다할 것이다. 그런 삶이 계속해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하게 차오른다. 평생 몇 번이든 다시 길을 잃어도, 언제나 글쓰기만큼은 계속 내 곁에 지켜서서 함께 헤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