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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하 Oct 10. 2024

펍에서 만난 고수

일을 장악한 사람의 에너지


언제 봐도 여기 맥주 메뉴판은 불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로로 길쭉한 작은 칠판마다 손글씨로 맥주 이름과 알코올 도수가 쓰여 있다. 하지만 어떤 맥주 스타일인지, 무슨 맛인지는 설명이 전혀 없다. 크래프트 맥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미션 헬레스‘나 '당나귀 포터’ 등의 이름에서 맥주 스타일을 유추하겠지만, '코끝에 여름‘ 같은 이름으로는 그런 짐작도 어렵다. 맥주 리스트가 적힌 칠판을 빤히 바라보다가 나는 이 불친절이 철저히 고의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홀 서버(이곳에서는 '비어텐더'라고 부르는 모양이다)의 압도적인 접객 때문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는 손님들에게 메뉴에서 궁금한 점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는 말을 해두곤, 정말 질문이 들어오면 기다렸다는 듯 양조사나 셰프에 버금가는 설명을 쏟아냈다. 그냥 외운 정보를 줄줄 꺼내놓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질문에 적확하고도 풍부한 답변을 내놓았고, 마실 생각 없던 맥주도 주문하고 싶어질 정도로 맛깔나게 손님의 구미를 당길 줄 알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반 정도 남은 첫 잔을 확인하고는 음식과 함께 다음 맥주를 주문하기로 한다. 음식은 사천식 라구 파스타로 정했다. 다진 고기를 넣고 끓인 라구 소스에 얼얼하고 매콤한 향신료 풍미가 더해져 중독성 있는 파스타다. 토핑된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서 비비면 고소한 꾸덕함까지 코팅된 맛 폭탄이 된다. 여기에 어울릴만한 맥주가… 잘 모르겠지만 일단 IPA로 넘어가기로 한다. 홉의 쓴맛이 매운맛을 상쇄해 준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다. 탭 리스트를 보니 IPA 두 종류가 있다. 이파리 IPA와 오딧세이 IPA_탱자.


어떤 게 라구 파스타와 더 잘 어울릴지 몰라서 비어텐더에게 둘 중 하나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을 하면서도 좀 짓궂은가 싶었다. 아무래도 선택 폭이 넓어야 어울리는 맥주를 추천해 주기 수월할 텐데, 무턱대고 둘 중 하나를 골라달라니. 둘 중에 어울리는 게 없으면 어쩔 텐가. 게다가 둘 다 IPA라 '매운 음식엔 쓴맛을 지닌 IPA가 어울린다'는 식의 단순한 페어링 지식으로는 답변이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짓궂은 손님을 만족시키는 설명을 내놓는다.


“아무래도 쓴 맛이 비교적 선명한 이파리 쪽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오딧세이도 IPA이긴 하지만 정확히는 배럴 에이지드 사우어 IPA거든요. 토종 탱자를 넣고 배럴에서 2년 동안 숙성해서 쿰쿰하고 새콤한 캐릭터를 섬세하게 강조한 맥주예요. 사천식 라구파스타가 향신료도 많이 들어가고 맛이 강렬해서 오딧세이의 섬세한 특성이 가려질 수 있습니다.”


뭔가.. 페어링을 추천받은 맥주는 물론이고 추천하지 않은 쪽도 상당히 궁금해지는 설명이다. 일단 비어텐더가 추천한 이파리 IPA를 파스타와 곁들이고는, 결국 오딧세이 IPA까지 주문했다. 이런 비어텐더를 보유한 펍이 메뉴판에 상세한 설명을 써놓을 생각을 못 했을리는 없다. 불친절한 메뉴판은 손님과 비어텐더의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펍이 의도적으로 설치한 장치인 셈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에는 단점이 있다. 홀에 서 있는 비어텐더에게 업무 과부하가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칠판에 써 있는 탭 리스트에 정보가 별로 없으니 손님 중 열에 여덟아홉은 맥주를 고르기 위해 비어텐더를 '반드시' 불러야 한다. 바에 앉은 손님만이라면 그럭저럭 대응할 수 있겠지만, 홀에 있는 손님 모두를 그런 식으로 커버하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이 점을 펍에서도 모를 리 없고, 따라서 그런 과부하도 감수하기로 마음먹은 접객 설계라고 보는 편이 아마 맞을 것이다.


비어텐더들이 그런 펍의 방침에 불평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죽을상을 하고 주말 피크타임이 지나가기까지 버틴다는 인상이 전혀 없었다. 바와 홀을 누비며 진심으로 즐겁게 손님을 맞았다. 바 안쪽에는 맥주잔을 설거지하는 개수대가 설치돼있었는데, 그들은 탄약을 재장전하는 군인처럼 빠르게 잔을 씻어 건조대에 뒤집어 놓았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고개를 돌려 자신을 찾는 손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 홀 전체를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손님이 부르면 그 앞으로 빠르게 다가가 눈을 맞췄다.


다음에 마실 맥주 순서를 정하려고 탭 리스트를 오랫동안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더니 비어텐더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내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심지어 자신을 부르지 않은 손님까지 눈여겨보고 있다는 걸 알고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설명을 듣고 맥주를 고르자, 그는 '역시 탁월한 선택이십니다'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얼굴에서 자기 일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사람의 자신감이 비쳤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더 이상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에 의존할 수 없는 시간이 됐다. 그는 붉은 양초를 켜서 펍 여기저기에 올려두었다. 펍 안이 따뜻한 불빛으로 은은하게 일렁였다.


나는 가끔 와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갈 뿐이지만, 저 사람은 거의 매일 저렇게 펍을 지킬 것이다. 그런데도 놀랍도록 권태가 느껴지지 않는다. 실로 압도적인 접객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흠칫 놀랐다. 사실 접객이 압도적이라는 건 좀 이상한 말이다. 접객이란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해 손님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응대하는 행위다. 그런 행위와 ‘압도‘라는 단어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로 다른 손님들은 비어텐더가 어떻게 움직이든 별 신경 쓰지 않고 맥주와 음식을 즐기며 이야기에 집중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인 게 아닐까.


어느새 나는 손님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이 사람을 보고 있다. 그게 ‘압도적인 접객’이라는 어색한 단어 조합을 떠올린 이유일 것이다. 저 사람을 움직이고 있는 건 책임감일까. 물론 펍에 온 손님을 응대하는 최전선에 서 있으니 어느 정도 그럴 테다. 하지만 ‘책임감’은 왠지 '의무감'이라는 뉘앙스가 녹아있는 말 같아서 마음에 차지 않는다. 단순한 책임감을 넘어선 어떤 자발적인 열망이 저 사람을 움직이고 있다. 그 에너지가 저 사람만의 장인적인 탁월함을 만들어낸다. 바로 그 점이 내가 저 비어텐더에 압도되는 기분을 느낀 이유였다.


나는 내가 쓰고 있는 것을 저만큼 장악하고 있을까. 누군가 글을 쓰고 있는 내게서 저 비어텐더와 비슷한 에너지와 리듬을 느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너무 힘을 주는 대신 적당한 마음으로 루틴하게 쭉 써나가야 한다고 매번 다짐하면서도, 결국은 이런 탁월함 쪽으로 늘 마음이 기운다. 효율적인 생산의 측면에서는 뚜렷한 단점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인 것을.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며 계속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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