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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하 Sep 20. 2024

그게 비현실적인 기대라 하더라도


“당신이 윗몸 일으키기를 최대 열 번까지 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죠. 열한 번은 불가능해요. 그럼 매일 운동하러 나와서 윗몸 일으키기 몇 번을 해야 할까요?“


피라스 자하비라는 이름의 피트니스 트레이너가 책 속에서 묻고 있었다. 무려 아홉 번 연속으로 UFC 챔피언 타이틀을 방어해 낸 조지 세인트 피에르 선수를 키워낸 사람이란다. ‘글쎄…열 번이 최대니까 여덟 번이나 아홉 번인가..‘ 다음 부분을 읽었다. 피라스 자하비는 예상에서 빗나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섯 번입니다. 그래야 내일 또 체육관에 부담 없이 나올 수 있어요. 그렇게 매일 하다가 다섯 번으로는 전혀 운동이 안 되는 시기가 오면 여섯 번으로, 그것도 너무 쉬워지면 일곱 번으로 늘리면 됩니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10km 넘는 거리를 달려본 적 없던 시절, 나는 마라톤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심장이 터질 것 같고, 호흡이 턱에 닿을 듯 가쁜 상태를 42.195km라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뛰는 동안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 눈에 비친 마라톤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의지와 지구력을 지닌 존재나 도전할 수 있는 종목이었다. 도저히 나 같은 동네 러너가 넘볼 영역이 아니었다.


실제로 대중 매체에서는 마라톤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는듯한 콘텐츠가 종종 나온다. 기안84가 풀 마라톤에 도전하는 모습이 지난해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려졌는데, 거기서도 그런 식의 묘사가 등장한다. 기안84는 레이스 초중반인 18km 지점부터 이미 호흡이 거칠었다. 급수대마다 연거푸 물을 마셔댄 탓에 복통에 시달리고, 나중엔 발목 통증 때문에 여러 번 주로 위에 주저앉는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나 다리를 거의 질질 끌다시피 해서 끝까지 완주해 낸다. 그런 그의 모습에 정말 많은 시청자가 감동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콘텐츠들이 마라톤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아직 풀 마라톤을 완주한 적은 없지만(올 가을에 처음 도전할 예정이다.) 32km까지 달린 적은 있고, 어쨌건 장거리 달리기 과정 전반을 겪어봤다는 점에서 내 나름의 견해는 말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장거리 달리기가 어떤 면에서 무척 힘든 건 사실이긴 해도, 내 경험상 저런 느낌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기안84가 보여준 장면들은 풀 마라톤에 도전하기엔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훈련량과 그의 마라톤 완주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려는 방송사의 필요가 맞물려 나온 것이라고 추측한다.


만약 달리는 중에 숨이 벅차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면, 아마 그 지점부터 5km를 채 버티기가 힘들 것이다. 그 상태에서 몸이 보내오는 신호를 ‘의지’로 억누르고 계속 달리면 기안84가 보여준 장면을 재현하게 될 확률이 높다. 내가 경험한 마라톤은 불굴의 의지로 완주해 낸다기보다는, 러너들이 '마일리지'라고 부르는 거리를 충분히 쌓고, 그렇게 몸에 축적한 달리기를 대회 날 차분하게 재확인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 마일리지는 어떻게 채우는가. 호흡이 가쁘지 않을 정도의 조깅으로 대부분을 채운다. 심박수를 기준으로 운동 강도를 다섯 영역으로 나누는데, 최대 심박의 60-70% 정도로 수행하는 두 번째 영역을 zone2 운동이라고 부른다. (최대 심박의 50-60%는 zone1, 70-80%는 zone3다.) 전체 훈련의 8할 정도는 zone2 러닝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 고강도 인터벌 훈련 등을 병행하는 게 좋다고 여러 달리기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심박뿐 아니라 마음도 60% 정도로 미지근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장거리를 달리는 날에는 ‘오늘치 달리기 조지고 들어온다'보다는 ‘지금부터 긴 도보 여행을 떠난다'에 가까운 태도를 취한다. 그렇게 달리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뛰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만, 3~4km를 넘은 후엔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어서 뛴다는 사실과 조금 멀어진다. 그다음부턴 마치 인간처럼 달리는 기계에 탑승해서 반쯤 자동으로 전진하는 느낌이다. 이런 식이라면 4시간이든, 5시간이든 뛸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그렇게 절전 모드로 달려도 거리가 길어지면 힘든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고통은 심장이나 폐가 터질 것 같은 느낌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한 가지 동작을 몇 시간 동안 반복하며 근육에 쌓인 피로에서 오는 힘듦에 가깝다. 내 기준으로 15km를 넘기면 슬슬 다리 움직임이 경쾌함을 잃어가고, 25km를 넘으면 물을 흠뻑 먹은 이불처럼 온몸이 무거워진다. 그쯤 되면 에너지도 거의 방전돼서 그만 달리고 싶다. 그래도 이 과정을 반복할수록 에너지 고갈 시기는 점점 늦게 찾아온다. 장거리를 달리는 감각에 익숙해지며 기량이 성장하는 것이다.


최대 심박의 60% 정도로 뛴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막연히 두려워했던 심장이 파열될 것 같은 고통을 서서히 에너지가 방전되며 몸이 무거워지는, 비교적 감당할 만한 고통으로 바꿔냈기 때문이다. 처음 30km 넘게 달린 날, 러닝 앱 화면에 찍힌 낯선 숫자를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충분히 개연성 있는 결과였다. zone2의 영역에서 평온하게 야금야금 달리는 거리를 늘려가는 사이, 어느덧 나는 10km 러너에서 하프 마라토너가 되었고, 30km 너머까지도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직 도달해 보진 않았지만 42.195km도 같은 식으로 가능할 것이다. 쉽게 낙관하지 않는 편인 내가 생각하기에도 틀림없다.


몇 달 전 담당하게 된 원고가 너무 막막하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다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했다. “책을 쓰기 위해서 지금까지 달리기를 해온 거야, 알겠어??“ 말끝에 버릇처럼 알겠냐는 질문을 붙이는 친구였다. 스스로 명확한 이유를 모르는 채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가.. 정말 나는 이 일을 하려고 그동안 꾸준히 달려온 걸까’ 싶어서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물론 진짜 내게 예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쓰는 일을 하게 되리라고 5년 전부터 예측해서 달리기를 시작했을 리는 없다. 다만 그동안의 내 달리기가 결과적으로 전혀 의미 없는 짓은 아니었구나, 그 사실이 기뻤다.


장거리를 달리는 것과 같은 미지근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원고를 썼다. 달릴 때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동안 누가 다른 일을 들고 쳐들어오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탈진해서 주어진 분량을 끝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며 차분히 집필을 이어 나갔고, 그에 비례해 원고가 쌓여갔다. 비록 예정 마감일을 좀 넘기긴 했지만 무사히 초안을 완성해 클라이언트에게 넘겼다. 다행히 클라이언트는 내 결과물을 꽤 마음에 들어했다.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일을 항상 그런 식으로 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라는 걸 안다. 종종 어떤 일은 60%의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서 어쩔 수 없이 심박을 끌어올려야 하고, 그러고도 역부족일지도 모른다. 그럴 땐 최대 심박으로 어떻게든 고군분투할 도리밖에 없다.


하지만 가급적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심장의 출력을 최대로 끌어내 쓰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지쳐 나가떨어지고, 오래 쉬어야 한다. 그럼 다시 나의 축적이 멈추게 된다. 아무래도 그런 상황은 초래하고 싶지 않다.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언젠가 내 60%는 지금의 100%를 뛰어넘는다. 그때가 되면 심박수를 폭발시키는 대신, 그동안 쌓아온 시간의 힘을 은은하게 발휘하기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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